지역연구자 사료 발굴·후손 검증
독립운동사·보훈부 기록 변화 필요
경인일보는 지난 2월 1919년 3·1운동 당시 인천에서 상가 ‘철시(撤市) 투쟁’을 주도했으나 이후 행적은 묘연했던 소년 독립운동가 ‘임갑득’의 정체가 인천 최초의 치과의사이면서 사회활동가·언론인으로 굵직한 행보를 남긴 ‘임영균’(1904~1966)이었다는 사실을 단독으로 보도(2월20일자 1·10면 보도)했다.
인천에서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독립운동 역사 속 인물과 인천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인물을 ‘하나의 인물’로 연결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 연구자들이 새로운 사료를 발굴하고, 후손 등을 만나 검증해 낸 결과다.
임갑득과 임영균을 연결하는 연구 과정에 참여한 이들 중 한 명인 이원규 소설가가 임갑득·임영균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추가로 발굴하고, 이를 이야기로 풀어낸 ‘약전’(略傳)을 경인일보로 보내왔다. 이원규 작가는 조봉암, 김원봉, 김산, 고유섭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인물들을 다룬 평전을 써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원규 작가가 복원해 낸 임영균 이야기를 4차례 연재한다. 동떨어져 있던 인천의 두 인물이 하나로 합쳐지는 ‘임영균 약전’을 통해 인천시사(市史)는 물론 한국독립운동사, 국가보훈부 기록도 다시 쓰여야 할 것이다. → 관련기사 10면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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