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이 묻어있는 아침 출근길

고된 노동 속 마음도 거칠어져

같은 인간이지만 우린 다 달라

고유성을 존중해 줄 순 없을까

이원석 시인
이원석 시인

아침 출근길. 공항전철을 타고 바다를 건넌다. 사람들의 얼굴엔 희미하게 조금씩 짜증이 묻어있다. 첫 몇 개월은 도시락을 싸갔다. 김치 조금, 구운 스팸 몇 조각, 그리고 계란프라이 세개, 그리고 흰밥 가득. 지하철에서 김치 냄새가 나면 어떻게 하냐고 한 동료가 물었다. 김치는 밀폐용기에 담기 때문에 크게 냄새가 날 것 같지 않았다. 한국 사람이 김치 냄새를 두려워하랴.

어느 날 전철 의자에 앉는데 옆 사람이 인상을 찡그리더니, 큰 목소리로 “아, 김치냄새!” 하고 소리쳤다. 너무 놀라 돌아봤는데, 그 사람은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재차 “김치냄새가 나잖아!” 라고 소리쳤다. 분명 밀폐용기에 담았고 다시 도시락통 케이스에 넣었고 그걸 다시 가방 안에 넣었는데, 희미하게 배어나오던 김치냄새가 가방에 조금씩 쌓이다가 의자에 앉는 순간 가방이 눌리면서 새어나왔나 보다.

그 후로 나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내내 서운했다. 같은 공항으로 출근하는 노동자들끼리, 직원식당 점심값 6천원 아끼려고 30분 일찍 일어나 안달복달하는 사람을 이리 구박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인천공항에 가려면 인천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계양역에서 공항전철로 갈아타야한다. 계양역에서는 인천공항으로 가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반대쪽 서울로 출근을 하기 위해 전철을 갈아탄다. 양쪽으로 갈아타는 사람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순간에는 인파와 인파가 부딪히며 삼각파도가 일어난다. 이 사이에서 우리는 쉽게 어깨를 부딪힌다. 어떤 사람이 내 앞으로 급하게 추월을 하다가 나와 발이 얽힌다. 그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외친다. “아이, 씨발!”

난 진행경로를 급하게 바꾼 그의 탓이라고 여겼지만 그는 아마 속도를 줄이지 않은 내 탓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폭언을 던지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쓸쓸한가. 오전 출근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다. 전날의 피로가 채 풀리기도 전에 일어나야하는 것도, 내내 서서 고통 받다가 자리를 차지하려고 뛰어가 앉는 것도,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환승로에서 뛰다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것도 얼마나 짜증이 나는 일인가. 우리는 악의 없이 상처 주고 또 급하게 서로를 용서하고 있으리라. 싸울 시간도 기력도 우리는 없다. 전날의 피로를 이고 지고 바쁘게 출근하는 일은 사람의 존엄과 다정을 깎아먹는 일이다.

공항에 도착하면 하루치의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일이 바쁘고 노동 강도가 높아질수록 관리자의 목소리가 거칠어진다. 그 목소리를 묵묵히 받아내는 우리의 마음도 거칠어진다. 거칠어진 우리는 노동의 과정에서 우리와 부딪히는 모든 이들에게 그 마음을 조금씩 나눈다. 악당도 없이 악해지고 무뢰배 없이도 무례해진다.

면세구역으로 올라가면 수많은 외국인들을 마주한다. 셀 수 없이 많은 국가에서 온 수많은 인종이 거리를 오간다. 가만히 살펴보면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국적도 피부색도 머리색도 얼굴 생김새도 패션도 모두 다르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같은 인류가 아니라 모두 고유한 개개의 다른 종으로 느껴진다.

공항은 하나의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운 정글 같은 생태계이고 각지에서 날아온 다양한 종들이 각자 자신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뽐내며 그 곳을 지나다닌다. 우린 다 다른 것이다. 같은 인간으로 카테고리화 하여 묶어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너무나 서로가 다르다고 느낀다. 다른 우리가 각자의 진실을 서로에게 관철시키기 시작하면 우리는 늘 서로를 혐오해야 한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가난한 사람을 혐오하고 따돌림에서 벗어나려고 따돌림을 한다. 살기 급급해서 혐오하고 살만 해도 혐오한다. 싫어하는 것도 혐오하고 선망하는 것도 너무 멀어서 혐오한다. 같아도 혐오하고 달라도 혐오한다.

그러나 유사 이래로 특정집단이 혐오의 당연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의 정당성이 부여된 때가 있는가? 우리가 모든 혐오에서 벗어나 모두를 개별성과 고유성을 가진 존재로 대하여 줄 수는 없을까. 퀴어 문화축제를 맞이하며 든 생각이다.

/이원석 시인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