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지사 당선자, 그는 누구인가
세탁소집 둘째딸 넉넉지 않던 유년
부당함 보면 참지 않던 강직한 판사
김대중 前대통령 권유로 정치 입문
추다르크 유세단 이끌고 화력 지원
민주당 대표 시절 최순실 사태 맞서
법무부장관땐 검찰·사법 개혁 앞장
헌정사 최초의 여성 광역단체장은 언제나 유리천장을 깼다.
‘피의자가 위협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형사 재판을 맡기지 않자 ‘그럼 남성 판사들은 전부 태권도, 합기도 유단자냐’며 부당함을 항의하던 젊은 여성 판사는 정치에 입문했을 때도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택해 당당히 승리했다.
대구 출생으로 민주당에서 정치를 하는 여성. 그 자체로 희소했고, 길은 매 순간 평탄치 않았다. 어느새 ‘장군’의 칭호가 붙어 ‘철의 여인’으로 전 국민에 각인됐다.
입법, 사법을 두루 경험한 그는 또 다시 역사를 새로 쓰며 최대 광역단체 경기도에서 종합 행정의 총책임자로 거듭난다. 자연스레 대권 주자로도 주목받고 있다.
■ 세탁소 집 둘째 딸, 불의에 저항하는 판사로
1958년 대구에서 태어난 추미애 경기도지사 당선자는 세탁소집 둘째 딸이었다. 넉넉지 않았던 집안 형편에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공부하는 딸을 뒷받침했다. 한양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한 추 당선자는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법복을 입었다.
판사가 된 후에도 부당함에 목소리를 높이고, 불의에 굴하지 않은 채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는 “민사, 가사 다 해봤는데 형사 재판에선 제외하길래 당시 법원장에게 찾아가 항의했다. 그러니까 돌아오는 답이 ‘여자인데, 피고인이 달려들기라도 하면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었다. 그래서 ‘남자 판사들은 그럼 다 태권도, 합기도 유단자냐. 상황은 똑같은 것 아니냐’라고 따져 물었다. 실력이 아니라 성별로 갈라진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법원장이 ‘그럼 한 번 해봐라’라고 하더라. 그래서 형사 담당 단독 판사가 됐다. 아무도 여자가 형사 재판을 한다는 생각을 못 할 때였다”고 회고했다.
춘천지법 판사로 재직했던 1986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전환시대의 논리’ , ‘옥중서신’ 등 당시 검찰이 ‘불온서적’으로 규정해 전국 서점 압수수색을 진행하려다 춘천지역 서점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일화도 유명하다. 당시 신참 판사였던 추 당선자가 “법을 남용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 죄명이 ‘유언비어 유포’로 명시돼있는데 그 책들을 그렇게 볼 근거 자료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민주화 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졌던 당시엔 외부의 숱한 압박에도 시위에 참여했던 대학생들의 구속 영장을 기각한 일 등도 회자되고 있다. 추 당선자가 검찰·사법 개혁에 정치 여정 상당부분을 쏟아부은 점도 판사 시절 경험과 맞닿아있다.
■ 추다르크
정치 입문은 광주고법 판사로 재직하던 중인 1995년 이뤄졌다. 정치적 스승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해 여름, 한 중국집에서 30대 청년 판사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던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은 추 당선자의 인생을 바꿨다. 변화를 만들고 싶다, 정의가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만났다. 젊은 여성이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아닌, 지역구 국회의원, 그것도 서울에서 도전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보자는 다짐도 이날 만남이 계기가 됐다.
이에 정치 입문 1년도 채 되지 않아 서울 광진을에 출마해 당당히 승리, 국회에 입성했다. 판사 시절 그랬던 것처럼 금배지를 단 후에도 그는 부당함을 외면하지 않았다. 국가 폭력의 대표적 사례이면서도 당시엔 누구도 언급조차 하지 못했던 제주 4·3 사건에 관해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대표발의한 게 단적인 일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자행한 폭력, 그 부당함을 모두가 외면할 때도 추 당선자는 그럴 수 없었다.
옳다고 믿는 길 앞에서 유불리를 가리지 않는 모습은 추 당선자의 정치 여정 내내 이어졌다. 1997년 대선 당시 고향인 대구에서 따가운 시선에도 이른바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고 김대중 전 대통령 유세에 기꺼이 나섰다. ‘추다르크’라는 별명은 이때 생겼다.
■ 개혁 이끈 선구자. 또 다시 새로운 길 앞으로
개혁은 언제나 순탄치 않다. 험난하기에 흔들리기 쉽고, 그래서 단호해야만 이뤄낼 수 있다. 추 당선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개혁에 성공했고, 남들이 거두기 어려운 성과를 이뤄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된 추 당선자는 곧바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을 맞닥뜨렸다. 촛불이 광장을 메웠고, 민주당 대표로서 그는 열망에 부응해야 했다.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를 압승으로 이끌며 민주당 역사상 임기를 끝까지 마친 당 대표로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추 당선자는 당시 성범죄 의혹을 받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단번에 제명하는 등 단호한 대처로 자칫 당이 혼란에 빠지는 일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 대표를 역임한 후에도 촛불 민심의 열망을 외면하지 않았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검찰·사법 개혁의 선봉에 선 추 당선자는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대표되는 검찰 개혁 문제를 두고 날선 대립을 이어갔다. 검찰 조직의 거센 저항 속 윤 전 총장이 유력 야권 주자로 발돋움하는 등 나날이 안팎의 압박이 거세지는 와중에도 추 당선자는 지지 않았다.
장관 임기를 마치고 국회로 돌아온 후에도 검찰·사법 개혁에 대한 추 당선자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당내 최다선 의원이었지만 갑작스레 공석이 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을 맡아달라는 당의 부탁을 마다하지 않고, 입법 영역에서 개혁을 주도했다. 각종 법안 처리에 대한 야당의 견제가 거센 와중에 이미 경기도지사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되며 그의 위원장직 사임이 일찍부터 점쳐졌지만, 추 당선자는 주어진 책임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소임’이라고 공언해온 검찰개혁 법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후인 지난 3월에서야 위원장직을 사임한 채 도지사 선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지난 2일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 찾은 성남 은행시장에서 한 유권자는 추 당선자의 귀에 속삭였다. “당신이 선구자야. 화살도 맞고 외롭겠지. 그래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 역사는 기억할 거야.” 그는 늘 선구자, 즉 앞서서 달려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발자취를 남겼고, 이번에도 헌정사 첫 여성 광역단체장이라는 기록을 만들어냈다. 경기도의 ‘첫 여성 도지사 시대’라는 새로운 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 또 다시 추 당선자 앞에 펼쳐졌다.
■추미애 당선자 프로필
△1958년 10월 23일 경북 달성군(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출생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법학 학사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14기 수료
△광주고등법원 판사, 춘천·인천·전주지방법원 판사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제 15·16·18·19·20·22대 국회의원
△전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전 제67대 법무부 장관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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