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 전의 고뇌가 지금껏 흘러 여기까지 왔음에도 그 고뇌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그림들은 보여준다. 서울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이종구 화백의 작품이 그렇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핵심 공간인 ‘사유의 방’에 모셔진 국보 반가사유상 2점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 많다. ‘사유(Pensive) : 思惟’라는 전시회 명칭에 쓴 3가지 언어에서 드러나듯 메시지는 전 세계를 향한다. 작품 속 반가사유상은 ‘사유의 방’에서 조용히 사색에 잠긴 그 반가사유상 2점을 영락없이 그대로 옮겨 온 듯 사실적이다.
‘사유의 방’에 있는 국보 반가사유상은 6세기 후반~7세기 초반 작품들이다. 어느 모로 보나, 동양미술사에서 빛나는 명작이라는 평가(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를 받는다. 6세기 후반~7세기 초반의 한반도와 그 주변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세력 균형이 전쟁으로 요동쳤으며 고구려와 수나라, 당나라 사이에도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그 전쟁의 시대에 이 반가사유상 명작은 탄생했다. 그 사유는 전쟁 없는 극락정토를 향했으리라.
이종구의 작품 속 반가사유상은 ‘사유의 방’에서 나와 현시대의 아픔을 맞닥뜨리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떠올리게 하고, 테러와 폭력으로 인한 화염, 제주 4·3, 그리고 인간 사회의 온갖 차별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전쟁광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정말이지 강렬하다. 반가사유상이 페르시아에서의 전쟁 피해자들을 향해 있는 모습을 담은 작품에는 전쟁을 일으킨 네타냐후와 트럼프의 이마 위에 전쟁으로 숨진 이의 핏방울을 뿌려 놓았다. 평화롭던 곳을 지옥의 땅 예토(穢土)로 만든 데 대한 핏빛 저주다.
많은 작품은 정토(淨土)를 생각하는 반가사유상과 전쟁·폭력·차별의 인간 세상을 표현한 두 점을 맞붙여 한 작품으로 꾸몄다. 그 둘이 다르지 않은 하나라는 의미일 테다. 그 각각의 작품은 세로가 길고 가로가 짧은 직사각형인데, 둘을 합쳐 하나의 작품으로 보면 가로 세로의 길이가 같은 정사각형이 된다. 그 속에서 작가는 반가사유상을 향해 울부짖는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 땅의 피해자들에게도 눈길을 돌려달라고. 학고재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1400년 전 삼국시대 장인과 대한민국 작가 이종구가 힘을 합쳐 새롭게 그려낸 사유의 합작품임에 틀림 없다.
/정진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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