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가 없어 주권자 권리 멈춰

사태의 본질 음모가 아닌 무능

진상 조사 자기 손으로 한다니…

가해자가 수사 자처하는 그림

이재홍 변호사·수원경실련 집행위원
이재홍 변호사·수원경실련 집행위원

지난 6월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 투표일. 투표소를 찾은 시민들이 마주한 것은 기표소가 아닌 끝없는 줄이었다.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를 비롯한 투표소에서 한때 투표용지가 동났다. 손에 쥔 신분증과 한 표를 던지겠다는 의지만으로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한참 기다렸고, 누군가는 끝내 발길을 돌렸다. 종이 한 장이 없어 주권자의 권리가 멈춰 선 것이다.

처음 선거관리위윈회가 내놓은 숫자는 서울 14곳이었다. 그러나 다시 세어 보니 용지를 추가로 실어 나른 투표소가 전국 67곳, 실제로 모자랐던 곳이 50곳, 투표가 멈춰 섰던 곳이 22곳이었다. 잠실의 한 투표소에서는 투표함을 이송하지 못하도록 시민들이 길을 막아선 채 경찰과 며칠을 대치했고, 해당 투표함은 다른 지역 개표가 끝난 뒤에야 겨우 이송될 수 있었다. 마감 시각인 오후 6시를 넘기고도 밤 10시까지 표를 받은 곳도 있었다.

이쯤 되자 ‘부정선거’ 의혹이 다시금 고개를 든다. 그러나 선거에 부정하게 개입하려는 음모였다면, 누가 봐도 들통날 ‘용지 품절’만큼 어리석은 수법은 없다. 이 사태의 본질은 음모가 아니라 무능이다. 선관위는 유권자 수의 1.1배까지 투표용지를 찍어낼 예산을 쥐고도, 정작 인쇄량을 스스로 줄였다. 2025년 바뀐 지침이 지역 선관위 재량으로 인쇄 비율을 절반까지 낮출 수 있도록 길을 터 준 탓이다. 용지가 세상에 없었던 게 아니라, 있어야 할 자리에 제때 닿지 못했다. 결국 배분의 실패이자 관리의 사고였다.

뒷수습은 더 군색했다. 마감 직전 몰린 인파를 구제하려고 둔 예외 규정을, 제 손으로 용지를 동나게 한 선관위가 끌어와 밤 10시까지 투표를 이어 갔다. 원인 제공도 선관위가 하고 유권해석도 선관위가 내렸으니, 적법성 시비가 붙는 것은 당연하다.

책임지는 모습은 어땠나.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사흘만에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그의 임기는 어차피 이번 선거를 끝으로 마무리될 참이었다. 떠날 사람이 사과의 형식만 갖춘 셈이다. 4년 전 ‘소쿠리 투표’로 전임 위원장이 옷을 벗은 기억이 선명한데, 판박이 실패가 또 찾아왔다. 그런 선관위가 진상 조사마저 자기 손으로 하겠다고 한다. 가해자가 수사관을 자처하는 그림을 국민이 받아들일 리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일 이번 사태를 국민주권의 근간을 흔든 중대한 사안으로 규정하며, 국회에 국정조사를 요청하고 검찰과 경찰이 함께하는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책임 소재를 가리라고 지시했다. 사고 자체도 이해하기 어렵거니와 그 뒤의 대응과 해명마저 부족했다는 질타였다. 대통령은 선관위가 행정·입법·사법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독립기관임을 짚으며 “국민의 신뢰를 잃은 독립기관은 존재의 의미가 없다”라고 못 박았다. 헌법기관을 향한 이례적으로 무거운 경고다.

이번 사태는 선관위라는 기구의 오랜 약점도 비췄다. 중앙선관위원장은 대법관이, 지역 선관위원장 상당수는 현직 판사가 겸한다. 선거 분쟁의 최종 심판권자인 사법부와 선거 관리 실무 기구가 사실상 인적으로 결합해 있다면, 제 식구의 잘못에 매섭게 칼을 댈 수 있겠는가. 더구나 위원장은 비상근이어서 실무에서 비켜서 있다. 권한은 있되 책임은 흐릿한 구조다.

바깥에는 본보기로 삼을 선례가 있다. 2021년 독일 베를린에서도 용지 부족과 긴 줄, 마감 이후 투표 같은 관리 부실이 겹쳤다. 그러자 베를린 주 헌법재판소는 부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평등한 참정권이 깨졌다는 이유만으로 주의회 선거를 통째로 무효화하고 다시 치르게 했다. 선거의 정당성은 결과의 승패가 아니라 절차의 공정에서 나온다는 선언이었다.

길은 정해져 있다. 입으로 하는 해명이 아니라 자료로 증명하는 공개다. 투표소별 용지 산정 기준, 부족을 인지한 시각과 그 뒤의 조치 내역이 분초 단위로 드러나야 한다. 그 위에 독립적 진상규명과 국정조사, 책임자 문책, 다시는 같은 일이 없게 하는 제도 수술이 얹혀야 한다. 신뢰를 잃은 선거는 민주주의의 토대를 갉아먹는다. 한번 무너진 신뢰는 변명이 아니라 규명으로만 다시 세울 수 있다.

/이재홍 변호사·수원경실련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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