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지칭하는 단어들은 시대의 자화상이다. 취업도 학업도 하지 않는 ‘니트족’,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N포세대’, 부모 품을 떠나지 못하는 ‘캥거루족’. 돌아가다(return)와 캥거루족이 결합한 ‘리터루족’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부모 집으로 회귀한 ‘부메랑키즈’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치솟는 주거비와 생활비, 장기화된 경기침체는 청년들을 결국 부모의 집으로 되돌려보냈다. 사회의 ‘쓴맛’을 본 이들에게 ‘부모님의 품’이 피난처였다. 본가로 유턴한 청년들은 이제 ‘전업청년’이라 불린다.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전업청년’으로 살아가는 30대의 일상이 소개됐다. 2년째 특별한 직업 없이 부모와 함께 살며 청소와 빨래는 물론 ‘엄카(엄마 카드)’로 장을 보고 저녁상을 차린다. 집안일을 마친 뒤에는 운동과 연기 수업으로 자기관리를 이어간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파일럿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취업 문은 열리지 않았다. 국내 항공사만 100번 넘게 낙방한 ‘비행낭인’이라는 고백이 씁쓸하다.
각종 통계는 취업전선의 냉혹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청년 실업률은 7.4%로 전체 실업률의 두 배에 육박한다. 그냥 쉬고 있거나 실업 상태인 20~30대 미취업자는 171만 명에 달하고,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은 800만 명을 넘어섰다. ‘쉬었음’ 상태의 청년만 70만 명이다. 경제는 성장세인데 청년의 일자리는 늘지 않는다. 실업자 네 명 중 한 명이 청년이라는 현실은, 고용시장의 균열이 가장 약한 고리에서부터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전업청년’ 현상을 개인의 노력 부족이나 취업 눈높이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불편한 진실을 덮는 일이다. 기업은 신입보다 경력을 원하고, AI(인공지능)의 확산은 취업기회마저 없애고 있다. 청년들은 착실히 스펙을 쌓고 자격증을 따지만, 노동시장 진입은 갈수록 지체된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모에 대한 의존이 불가피해진다. 부모의 집은 취업을 준비하는 ‘전업청년’이 버티는 ‘장기 대기실’이 되고 있다. 문제는 대기실이 아니라, 문이 잠긴 채로 방치된 고용 구조다.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경험이 반복되면, 결국 두드리기를 멈추게 된다. 두려운 것은 ‘전업청년’의 존재가 아니라, 청년들이 끝내 도전을 포기하는 것이다. 의지는 청년의 몫이지만, 기회를 만드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다.
/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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