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울림… 들리는 세계
까다로운 미술관 구조, 치열하게 고민
압도적 구조물, 시선 따라 묘한 착시도
제목 모두 ‘무제’… ‘관세음’ 의미 역설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거장 박수근(1914~1965)과 이중섭(1916~1956). 이들 두 거장의 예술혼을 기리는 미술상을 받는다는 것은 작가에게 크나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인천 출신으로 박수근미술상과 이중섭미술상을 모두 받은 드문 이력을 가진 오원배 작가의 기획전 ‘오원배-존재의 소리를 보다’가 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내 현대미술관과 박수근파빌리온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거장이 인정한 작가 오원배(73)의 압도적인 작품 세계를 온전히 느껴볼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다.
박수근미술관은 완성도 높은 건축물이지만, 작품을 선보여야 하는 작가들 사이에서는 전시하기 ‘까다로운 공간’으로 통한다. 건축물 자체의 뛰어난 조형성 때문에 어설픈 작품은 오히려 그 공간에 짓눌리며 힘을 잃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원배는 치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이 ‘불친절함’을 극복했다. 작가가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결정된 이후 1년 동안 미술관을 10번 넘게 들락거리며 공간을 실측하고, 관람객의 시선과 이동 경로를 집요하게 분석한 결과다.
특히 박수근파빌리온 2층에 전시된 군상 작업과 마주하면 작가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삼각형 형태의 천장에 맞춰 일부러 캔버스를 오려낸 ‘변형 캔버스’는 공간의 제약에 갇히지 않기 위해 오히려 공간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박수근미술관 내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작가 특유의 대작도 관람객을 압도한다. 작게는 2m70㎝ 크게는 4m높이에 이르는 대작은 천장 높이를 실측해 작업 전 계획됐다.
압도적인 크기의 대작들은 극단적인 시점과 결합하며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마치 높은 사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부감(俯瞰) 화면은 현대인이 느끼는 ‘존재의 불안’을 가시화한다. 일상의 평이한 눈높이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시각적 전율이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다. 걸음을 멈추고 차분한 마음으로 한 곳에 서서 작품을 감상했다면 바라보는 위치를 바꿔가며 감상해 볼 것을 권한다. 작품을 응시하며 걸음을 걸으면 화면 속 구조물은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듯한 묘한 착시를 일으키는데, 관람객이 어느 위치에 있더라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출품작의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모두 ‘무제(Untitled)’다. 작품 속 배경은 공사 현장, 병실, 기하학적 공간, 텅 빈 대중목욕탕 등이다. 작가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환경·노동·인간 소외 등의 현실적 고민을 난해하지 않은 방식으로 던진다. 그중에서도 전시장 한편을 가득 채운 6m가 넘는 초대형 목욕탕 그림은 백미다. 평범한 일상의 공간인 목욕탕이 기이하고 서늘한 분위기로 다가오는데, 지난해 강원 지역이 겪은 극심한 가뭄과 제한 급수 사태에서 착안한 작업이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인 ‘존재의 소리를 보다’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관(觀)한다는 관세음(觀世音)의 의미를 직역한 역설적 표현이다. 거장들의 이름을 등에 업은 만큼, 작가는 이번 전시를 앞두고 1997년 이중섭미술상 수상 전시 때보다 더 큰 중압감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왜 오원배여야 하는가를 오직 작품으로만 입증해 보여야 했습니다. 막상 전시를 열고 나니 커다란 숙제를 끝내고 소풍을 온 기분입니다.”
이번 전시는 9월 27일까지 이어진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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