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만 통용되는 정서 ‘의외성’
방법 찾고 부딪히며 문명 발전시킨 인간
AI 공존시대 갖가지 문제 해결할 실마리
올해 초 인공지능(AI)이 언론의 영역에 침투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로부터 반년 만에 AI는 또 발전했다. 당시 칼럼에선 사회부조리를 발굴·검증하는 언론인들의 사명까지 AI가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결론내렸지만, 이제 그마저 희망사항이겠다 싶을 만큼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챗GPT에 몇몇 언론보도를 긁어 넣어봤더니 지금껏 보도된 비슷한 유형기사를 비교분석해 비평을 내놓는다. 상당한 객관성을 갖춘 채 미비점과 보완점을 디테일하게 제시하고, 심지어 취재형태까지 유추해 조언을 준다. 원래는 현장을 먼저 경험한 고참기자들의 고유 역할이었다.
그래서 AI는 무섭다. AI가 인간의 역할을 어디까지 대신할지, 그 틈바구니에서 인간이 도태되진 않을지가 전 세계의 고민이다.
최근 중국판 넷플릭스로 불리는 ‘아이치이’ 베이징 본사를 갔었다. 기업 측 관계자들은 현재 자체개발 중이라는 프로그램 하나를 시연했다. 시놉시스나 대략적인 아이디어만 입력하면 시나리오뿐 아니라 콘티 이미지까지 생성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또 다른 기업에선 인간의 섬세한 손기술을 필요로 하던 용접작업을 AI로봇이 한 치 오차 없이 해내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완성할 수 있던 결과물을 뚝딱 하고 만들어내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막연히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위협적으로 AI가 인간의 역할을 잠식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AI가 특히 무서운 이유가 또 하나 있다. 2D영역에서 생성해내는 영상물들이다. 딱 봐도 공산품인 휴머노이드 말고, 우리가 TV와 스마트폰 등에서 접하는 영상물은 머지않아 실물촬영본을 완벽히 구현해낼 게 확실시되고 있다.
AI영상물이 딥페이크 범죄와 사기 등에 악용된다는 건 일찍이 제기된 우려다. 더 심각한 건 사람들의 사상에 인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인물과 집단, 인종, 종교, 정책 등을 미화하거나 끌어내리려 할 때 실사(같은)영상보다 좋은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접하는 영상이 AI제작물이라는 걸 인지할 때 감정에 큰 동요가 없지만, 이를 실사영상으로 믿게 되면 기쁨과 슬픔, 분노, 쾌락 등의 심경을 일으킨다. 활자보다 강력한 심리지배 수단이다.
그래서 AI는 위험하다. 위조지폐에 비유할만하다. 실제와 구분되지 않는 즉시 ‘세팅한 금액’ 만큼 값어치를 해버린다. 주워담을 땐 늦다. 올해 들어 AI생성물에 워터마크 표시의무를 부과하는 AI기본법이 시행됐으나 인터넷상에는 AI워터마크 제거법을 안내해 놓은 콘텐츠가 즐비하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딥페이크영상의 경우 AI로 작업한 재생구간 전체에 로고를 표출하는 방법 등을 제시했는데 이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제도가 AI 발전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 불안하다.
하지만 이 불안한 감정은 AI시대에서 파생하는 갖가지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감정에 흔들림이 없는 AI와 다르게 사람들 사이에만 통용되는 정서, ‘의외성’이다.
김애란 소설가는 AI와 인간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손석희 앵커가 뉴스 진행 중 고 노회찬 의원을 언급하다 20초간 말을 잇지 못한 사례를 언급하며 “유려하고 빠른 AI의 조언보다 인간의 투박한 침묵이 위로가 된 적이 있다”고 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둔 78수가 신의 한수가 된 것도, 가수 이찬혁이 청룡영화상 공연 도중 갑자기 샴페인잔을 흩뿌리고 빈잔을 내동댕이쳐 찬사를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인간의 의외성이 AI 공존시대에 우리가 살아갈 길을 열어줄 거란 믿음이 있다. 변수가 생기면 생기는 대로,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새로운 방법을 찾고 부딪히며 문명을 발전시켜온 인간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런 의외성을 갖고 있다. 변치 않을 인간의 본질이다. AI는 무섭고 위험하지만, 그래서 두렵지는 않다.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