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목욕탕 유일한 휴식·사치
수영장 다니시면 좋을 텐데…
기끔 통하는 대화하고 싶을 때
나는 가끔 엄마처럼 행동한다
초등학교 시절, 남자 부반장 엄마가 반 친구들에게 돌린 빵을 먹지 않고 집에 가져갔다. “남자 부반장 엄마가 반 애들한테 빵을 돌렸어.” 엄마는 그 빵을 맛있게 드셨다. 나는 그때 여자 부반장이었는데, 엄마도 반 아이들에게 빵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다. 빵맛을 칭찬하고는 끝이었다.
내가 무사히 입시를 치르고 서울로 대학에 다니게 된 것도 별로 기뻐하지 않으셨다. 인천에 있는 가까운 학교에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지는 걸 싫어하고 뭐든 일등을 해야 했던 나와 달리, 엄마는 성공보다 행복이 중요한, 한국에서 보기 드문 유형의 인간이었다. 엄마는 등단의 좁은 문을 뚫고 소설가가 된 나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 언니의 삶을 더 기뻐했다.
지난달부터 자유수영을 시작했는데, 수영장에 가는 길이 하필이면 하루에 한 번 엄마와 통화를 하는 시간이다. 평생 수영장에 가본 적 없는 엄마에게 수영은 아무래도 사치인 모양이었다. 가격이 얼마냐고 물으셔서 “4천원이요, 나라에서 운영하는 데라 싸요.”라고 답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뭔가 석연찮다. ‘돈을 주고 운동을 한다’는 개념이, 헬스장 한 번 가본 적 없는 엄마에게는 아무래도 납득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옆 건물은 사설 수영장이라 한 번에 만 오천원이에요. 4배는 싼 거예요.”
엄마는 휴일이면 운동이 아니라 집안일을 하시거나 티비를 보는 게 전부. 산에서 나물을 뜯어오실 때도 있고, 가끔 바다가 보이는 이모 댁에 다녀오시는 게 여행이고 힐링이다. 아, 엄마의 유일한 휴식과 사치를 알고 있다. 목욕탕. 주말이면 꼭 목욕탕에 다녀오시지!
“수영장에서 목욕도 해요.”
“목욕까지 해서 4천원?”
“그럼요.”
“엄청 싸네.”
그제야 흔쾌히 수영을 열심히 하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겨우 통과다. 자유수영을 하는 동안 옆 레인에서는 아쿠아로빅 강습이 진행된다. 스무 명 정도의 강습생들이 시끌벅적한 음악을 틀어놓고 물 속에서 몸을 흔든다. 할머니들이다. 빨강, 노랑, 꽃이 달리거나 상어가 그려진 알록달록 수영모자를 쓰고 어설프게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언뜻 아이같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강사는 분명히 두 팔을 수직으로 뻗어 올리는 지시 동작을 선보이는데, 다들 자기 팔이 올라가는 만큼만, 자기 나름의 각도 안에서 엇박으로 움직이고 있다. 엄마들에게는 40도가, 60도가 수직이다. 목은 굽고 어깨는 말리고 팔다리는 펴지지 않는다. 자식들 키우느라 자기 몸 돌볼 겨를이 없이 한 평생을 살다가, 여든이 되어서 처음으로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한 엄마들의 몸. ‘우리 엄마도 수영장에 다니시면 좋을 텐데!’ 생각하지만, 내 수영장도 겨우 통과된 마당에 엄마를 설득하는 건 쉽지 않을 거다.
엄마와의 가장 큰 갈등은 담배였다. 대학생 시절 담배를 피우는 걸 엄마한테 들켰을 때, 엄마는 울면서 내가 몹쓸 병에 걸린 것처럼 슬퍼하셨다. 나중에 나는 페미니즘 화가의 전시회에 엄마를 데리고 가 담배 피우는 여자를 그린 작품을 함께 보면서, “이 그림은 남자는 담배를 피워도 되고, 여자는 담배를 피우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편견에 저항하는 작품이야.”라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내 설명이 별로 달갑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엄마는 그림 속의 어떤 남자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사람 잘 생겼네.”
어제는 그릇을 사러 나간다고 하니까, 다이소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고 추천하셨다. 대형 쇼핑몰에 가려다 다이소로 발길을 돌려 엄마가 좋아할 천 원짜리 그릇을 샀다. 가격표가 붙어있는 그릇을 찍어 엄마에게 카톡을 보내니 그릇을 아주 잘 골랐다며 칭찬하신다. 가끔 엄마와 통하는 대화를 해보고 싶을 때 나는 엄마처럼 행동한다. 제일 싼 걸 사고, 구멍 난 팬티를 입고, 목욕탕에 간다. 그리고 엄마처럼 행복해진다.
/최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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