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파트너스 나쁜 자본의 제물이 된 점포
인천 가좌·논현·숭의·송도·연수점 5곳 대상
대량 해고 쓰나미, 지역사회 덮칠 수도 있어
우리 동네 홈플러스가 소생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은 주민들이 몇이나 될까. 임시 휴업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마트 매장은 기묘한 모습을 띠었다. 두부 선반에 두부가 없고, 콩나물 매대에 콩나물이 없었다. 다양한 상품들이 가득 차 있어야 할 우유 코너엔 자체 브랜드 상품 몇 개만 띄엄띄엄 놓여있었다. 질소를 넣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과자봉지와 몇 년을 두어도 상하지 않을 공산품들이 가로로 길게 줄 세워져 진열대의 빈칸을 감추고 있었다. 무너진 공급망에 쥐어짜 낸 고육지책이었을 터. 보는 소비자가 더 민망할 지경이었다.
결국 지난달 10일 전국의 홈플러스 104개 가운데 37개 점포가 휴업에 들어갔다. 인천에서도 가좌·논현·숭의·송도·연수점 등 5개 점포가 대상이 됐다. 하루 전날, 닳고 닳아 제 몫을 다한 나무 주걱과 뒤집개를 새로 사러 우리 동네 점포를 찾았다. 휑한 매장에서 뒤집개만 하나 손에 들고나오다 중년의 여성 점원과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나. 허탈과 체념과 심지어 공포까지 얼핏 내비치는 그 불안한 눈길을.
11년 전의 그날 밤, MBK파트너스 경영진과 인수합병 전문가들은 샴페인을 터뜨리고 잔을 높이 들었을 것이다. 영국 유통기업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 경영권을 7조2천억원에 사들임으로써 한국 최대의 기업 인수합병에 성공한 기쁨을 마음껏 누렸을 것이다. 더군다나 경쟁 상대는 과거 ‘오비맥주’ 공동인수 경험을 가진 대형 글로벌 사모펀드 아니던가. 한국계 미국인 김병주 회장이 ‘마이클(Michael)’로 시작되는 자신의 영문 이름 세 글자를 따서 만든 사업체는 이를 계기로 동북아시아 최대 사모펀드로 부상한다.
그런데 애초에 우려가 없지 않았다. 인수 과정에서 차입매수 방식을 썼는데, 인수할 홈플러스의 보유 자산과 미래 현금흐름을 담보로 수조 원의 인수 자금을 빌렸다. 보는 각도에 따라 그 규모는 인수액의 70%까지 육박한다. 그러잖아도 성장 전략도 없이 ‘너무 크게 질렀다’는 얘기가 나오는 판이었다. 실제 차입액은 그 절반에 불과하다는 MBK파트너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홈플러스가 환경 변화에 따라 언제든 치명타를 입을 수 있는 항시적 재무위험을 안게 된 건 분명했다. 직면하고 있는 사태의 근원이다.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서 사모펀드의 순기능을 부정할 수 없다. 종종 나쁜 자본으로 비난받기도 하지만 절명의 위기 기업을 살리고, 고용을 유지하며,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긍정적인 기능도 한다. 사모펀드가 어떤 철학을 갖고 어떤 전략을 쓰느냐, 그리고 기업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에 따라 착한 자본과 나쁜 자본으로 갈리게 된다. 이 잣대로라면 MBK파트너스는 분명 나쁜 자본이다. 홈플러스와 관련해선 나빠도 아주 나쁜 자본이다. 협력업체에 줄 돈을 담보 삼아 발행한 홈플러스 단기 채권에 은퇴자금과 생활비를 투자했다가 몽땅 날린 피해자가 이미 수천 명이다. 이어 우리 동네 점포도 이 나쁜 자본의 제물이 됐다.
지난 4일, 임시 휴업 한 달여 만에 37개 점포에 대해 폐점 결정이 내려졌다. 발표 시점조차도 피해자 시각에선 악의적이다. 지방선거 바로 다음 날이다. 정부·여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유권자와 노동계, 그리고 야당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택일이었겠다. 사실 사안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홈플러스 사태는 선거기간 내내 전혀 이슈로 부각되지 못했다. 지역의 노동계나 정치권이 하나같이 조용했다. 후보들도, 유권자들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긴 매한가지였다. 너무 오랜 시간 기묘함이 이어져 실제의 감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주 뒤 문 닫는 인천 지역 5개 점포의 노동자만 500명이다. 한 사람, 한 사람, 가계의 전부거나 일정 부분을 책임져왔던 이들이다. 입점해 있는 임대 매장까지 합치면 직간접 피해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위협은 점차 확산할 것이다. 살아남은 점포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대량 해고의 쓰나미가 지역사회를 덮칠 수도 있다. 저토록 불안한 눈빛들을 받아내는 건 이제 우리 사회 전체의 무거운 과제가 됐다. 나쁜 자본으로 인해.
/이충환 언론학 박사·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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