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서 쓰러진 건설노동자
반도체공장 현장 근무 ‘뇌경색’
병원비·소송 비용 모두 감당하며
업무로 인한 질병 스스로 입증해
후유증 시달리며 결국 일감 줄어
“산재를 인정받기까지 1년 6개월, 그 사이 삶이 무너졌습니다”
33년 차 배관기능공 김정호(60)씨는 2022년 12월 경기 평택시 고덕지구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그는 ‘뇌경색’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당시 체감온도가 영하 10도에 달하는 열악한 현장에서 일했다. 살을 에는 칼바람과 추위를 막아주는 것은 천막과 작업대마다 놓인 드럼통 난로 등이 전부였다. 잔업이 많아 퇴근도 매일 오후 9시를 넘겼다.
“쓰러지기 열흘 전부터 두통이 있었지만, 한 달 단위로 계약을 맺는 건설 현장에서 연차를 어떻게 쓰겠습니까….”
김씨는 이듬해인 2023년 1월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급여’를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했다. 근무 중에 쓰러진 것이라서 당연히 산재가 인정될 것으로 여겼으나, 6개월 만에 나온 결정은 ‘불승인(미인정)’이었다.
산재는 크게 ‘업무상 사고’와 ‘업무상 질병’으로 나뉜다. 추락 등 업무상 사고는 근로복지공단의 사실관계 조사 등을 거쳐 산재 인정 여부가 결정된다. ‘뇌심혈관질환’, ‘근골격계질환’, ‘정신질환’, ‘직업성 암’ 등 업무상 질병은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김씨는 “평생 건설 현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추위와 더위 속에서 일한 것 외에는 뇌경색 발병의 환경적 요인을 찾기 어려웠다”며 “뇌경색 치료를 받으면서, 그동안 일을 하다가 병이 발생했다는 인과관계를 내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는 게 가장 막막했다”고 했다.
김씨와 같이 요양급여 불승인 결정을 받으면 심사청구와 재심사청구, 행정소송 등을 통해 산재에 의한 질병임을 입증해야 한다. 각 절차마다 수개월이 걸려 최종 판단까지 1~2년 이상 소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씨는 근무기록과 작업환경 자료 등 업무 관련성을 뒷받침할 자료를 확보한 뒤 재심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행정소송을 택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은 발병 전 장시간 노동 여부와 업무 강도, 한랭 환경 노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업무 관련성을 판단하도록 규정돼 있다. 문제는 노동자가 자신의 질병이 업무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씨는 이전 일터 등을 찾아다니며 각종 근무기록과 작업환경 관련 자료를 어렵게 받아냈다. 이후 2023년 8월 소송을 제기해 10개월 만인 2024년 6월 승소할 수 있었다. 일하다 쓰러진 지 1년 6개월 만이었다. 그는 “몸이 아파 더는 일을 못하는 상황에서 병원비와 소송 비용까지 전부 감당해야 했던 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산재가 인정되면 치료비 전액을 포함한 요양급여, 요양 기간 중 평균임금의 70%를 지급하는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업무로 인한 장해(치유 후에도 남는 영구적 신체 손상)가 남을 경우 장해 등급별 일시금 또는 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김씨가 받은 1년 치 임금 수준의 요양급여는 소송 기간 동안 쌓인 치료비와 생활비, 변호사 비용 등을 메우는 데 모두 쓰였다.
김씨는 산재를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뇌경색 후유증에 시달린다. 어렵게 재활 치료를 마친 그는 지금도 추운 날이면 오른팔과 다리에 저림 증상이 있다. 플랜트 건설 현장은 기술공들이 팀 단위로 움직이는 구조다. 김씨의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이 동료들에게 알려졌다. 결국, 일감은 줄 수밖에 없었다.
“산재를 인정받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소송에서 이겨 요양급여를 받게 되어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노동자가 스스로 산재를 증명하고 인정을 받을 때까지 버텨야 하는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 그래픽 참조·관련기사 3면
/송윤지기자 sso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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