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맞선 기록 ‘투쟁 속으로’
장애인 부모 편견을 단숨에 깨
우리가 보태야 할 건 연민 아닌
멋진 변화 여정 동참하는 걸음
십여 년 전 어느 날, 서울시청 앞에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을 외치는 수백명의 부모와 청사 점거를 막으려는 그만큼의 경찰이 대치하고 있었다. 양측의 물리적 충돌이 임박한 순간, 맨 앞에 서 있던 발달장애 아동 한 명이 돌연 경찰을 향해 걸어 나갔다. 막아선 경찰들이 긴장하고 부모들이 놀라 숨을 죽인 찰나,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가 앞줄에 서 있던 경찰관에게 다가가 두 팔을 벌려 와락 품에 안긴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서늘한 긴장감 대신 무언가 뜨거운 것이 번져갔다. 아이의 무해한 포옹은 마주 선 이들의 적대감을 한순간에 무장 해제시켰고, 광장에 모인 모두에게 인간적인 연대와 공존의 메시지를 소리 없이 전했다. 대치를 이어가던 경찰도 부모들도 그저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을뿐 우려했던 충돌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폭력의 위기가 감돌던 광장을 고요한 평화로 되돌려놓은, 작지만 위대한 반전이었다.
최근 출간된 ‘투쟁 속으로’를 읽으면서 나는 먼저 이 기억이 떠올랐다. 이 책은 거리에서, 광장에서, 그리고 차가운 농성장에서 세상의 차별에 맞서 싸워 온 부모들의 20여 년을 담은 생생한 기록이다. 장애인 부모들이 감내해 온 치열한 싸움의 연대기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은 이 책을 자식을 지키기 위한 부모들의 눈물겨운 기록이거나 약자들의 슬픈 하소연일 것이라 지레짐작하기 쉽다. 장애인 운동에 사회가 기대하는 감정은 대개 동정과 연민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전혀 다른 차원의 해방감을 선사한다. 이 책은 장애인 부모를 ‘자식 때문에 평생 고통받는 비극적 피해자’로 박제하기 일쑤인 우리 사회의 편견을 단숨에 깨부순다. 책의 주인공들은 슬픔에 주저앉는 법이 없다. 오히려 세상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치밀한 전략과 단단한 각오로 기어이 승리를 쟁취해 낸다. 앞서 광장의 아이가 보여준 포옹 역시 시혜를 바라는 애처로운 몸짓이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공존의 방향을 먼저 제시한 당당한 선언이었던 셈이다.
이들의 주체적인 힘은 2017년 강서구 특수학교인 서진학교 설립토론회에서 부모들이 무릎을 꿇었던 순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당시 언론은 이 장면을 ‘장애학생 부모들의 애달픈 무릎 호소’로 타전했고, 대중은 부모들의 처지에 눈물지으며 분개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읽어낸 그 무릎 꿇음은 결코 패배의 굴욕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별과 혐오라는 거대한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부모들이 스스로 선택한 ‘강력하고 지혜로운 용기’였다. 자식을 위해 자존심을 버린 수동적 모성애에 머물지 않고, 반대 세력의 명분을 단숨에 무력화하고 여론을 반전시킨 고도의 지혜가 담긴 선택이었다. 부모들의 무릎은 굽혀진 것이 아니라, 더 큰 도약을 위한 힘찬 발돋움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차별을 멈추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복지정책에 게으른 정부를 질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법안과 제도를 공부하고 설계하여 연대 조직과 함께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는 강력하고 전문적인 입법 운동가로 거듭났다. 그 결과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라는 구체적인 법적 권리를 쟁취해 냈고,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라는 패러다임의 전환까지 이끌어냈다. 폭염 속에서, 또는 눈 내리는 겨울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오체를 투지하고, 삭발과 단식을 이어가면서도 이들이 결코 방향을 잃지 않았던 이유는, 승리하는 법을 아는 당당한 주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자에게 눈물을 강요하거나 미안함을 부추기지 않는다. 이 책이 주는 진정한 해방감은 약자를 향한 값싼 동정이 아닌, 정의로운 싸움이 실제로 승리할 수 있다는 카타르시스에서 온다. ‘세상은 저절로 변하지 않지만, 함께 연대하고 행동하면 반드시 바뀐다’라는 명징한 진리를 온몸으로 증명하며 우리 안의 연대 의지를 뜨겁게 북돋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이 당당한 투쟁의 기록을 덮으며, 이제 우리가 보태야 할 일은 연민의 눈물이 아니라 이 멋진 변화의 여정에 동참하는 결연한 걸음이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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