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환경보단 ‘의학적 판단’에 좌우

직장내 괴롭힘 10년새 신청 7배↑

정신질환 연관성 등 받기 어려워

성희롱 관련 2차 피해 발생 지적

지난 19일 오후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의 공사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2026.6.19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지난 19일 오후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의 공사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2026.6.19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일하다 질병을 얻은 노동자가 산재를 인정받으려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질판위는 노동자가 앓는 질병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심의·판정하는 기구다. 신청인이 제출한 의무기록, 작업환경 조사 결과, 역학조사 의견 등을 검토해 업무 관련성 여부를 의결한다.

■ “의사 잘 만나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벽

지난해 9월 고용노동부는 업무상질병 처리 기간 단축을 위해 근로복지공단이 지정한 의료기관에서 추가 검사를 요구하는 ‘특별진찰’을 점진적으로 생략하겠다고 발표했다. 내장 인테리어 목공, 환경미화원 등 근골격계 질환이 다수 발생하는 32개 직종이 우선 적용 대상이다.

노동계는 고용노동부의 특별진찰 제도 감축 방침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다만, 처리 기간 단축에 그칠 것이 아니라 산재 처리 구조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노동계는 산재 인정 여부가 일터 환경이나 노동 강도 등에 대한 평가보다는 의학적 판단에 지나치게 좌우되는 구조를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인천에서 활동하는 한 노무사는 “올해 들어 사건 처리 속도가 다소 빨라진 것은 체감된다”면서도 “기간 단축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정작 산재 승인율이나, 신청인들의 입증 부담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현장에서는 ‘산재를 인정받으려면 의사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질판위에서는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의 근무 기간이 10년 이하면 일률적으로 불승인하는 등 기계적인 판단이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 눈에 안 보이는 질환일수록 입증 더 어려워

사고로 인한 골절이나 절단처럼 원인이 비교적 명확한 경우와 달리, 뇌심혈관질환·근골격계 질환 등 오랜 기간 누적되며 발생하는 질환은 노동자가 스스로 업무 내용을 비롯해 노동시간·작업환경·스트레스 요인 등을 자료로 입증해야 한다.

특히 최근에는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커지면서 이와 관련한 산재 신청도 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집계한 ‘업무상질병 정신질환 현황’ 자료를 보면, ‘정신질환’ 산재 신청 건수는 지난 2016년 183건에서 지난해 754건으로 7배 이상 늘었다. 이 중 ‘적응장애’(직장 내 괴롭힘 등 업무상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정서·행동 증상)는 같은 기간 21건에서 240건으로 급증했다.

인천에서 노동 상담을 하는 ‘평등의전화’를 운영하는 김현주 인천여성노동자회 상담소장은 “정신질환 산재를 신청하는 노동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는지에 대한 입증을 거친 이후에 정신질환과 해당 사건과의 연관성을 따져야 한다”며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산재를 인정받기까지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 중 ‘성희롱’으로 인한 산재는 입증하기 더 어렵다. 성희롱 피해자에 대해서는 2차 피해가 없도록 사건에 대한 맥락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다른 유형의 직장 내 괴롭힘과 동일한 과정과 심사 기준이 적용된다. 김 소장은 “조사 과정에서 ‘증거가 무엇이냐’는 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는 피해를 입증하는 정신적 고통이 더 커지는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송윤지기자 sso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