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의 1명이라도 반대하면 난항…

의사마다 생각 달라 인정에 영향

1~2시간내 30건 처리… 논의 미비

‘제반 사정 고려가능’ 개정안 발의

근무환경 등 법적 근거 효력 토대

19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구산동 근로복지공단 인천병원에서 입원중인 환자들이 야외에서 휴식을 하고 있다. 2026.6.19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19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구산동 근로복지공단 인천병원에서 입원중인 환자들이 야외에서 휴식을 하고 있다. 2026.6.19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산업재해 중 업무상 질병 판정 과정에서 노동자가 불리한 처지에 놓이는 배경으로 엄격한 인과관계 입증 부담과 장기간 심의 절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 운영 방식 등이 꼽힌다. 업무와 질병의 연관성을 보다 폭넓게 살필 수 있도록 심의 구조와 판단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임상의 중심… 의학적 판단에 무게 실린 질판위 심의 구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엔 업무상 질병 판정 심의는 질판위가 담당하도록 돼 있다. 질판위는 위원장을 포함한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영상·의무기록 등을 검토해 상병(傷病) 유무를 판단하는 ‘임상의’ 2명(정형외과·신경외과·정신건강의학과 등), 변호사·노무사 각 1명이 참여한다. 나머지 2명은 업무와 질환 간 연관성을 검토하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또는 산업위생관리기사로 구성된다.

질판위는 노동자가 업무상 질병이라고 주장하며 신청한 질병이 의학적으로 확인되는지를 검토한 뒤, 해당 질병과 업무 사이의 관련성을 심의한다. 쉽게 말해 주치의가 진단서에 적어준 병명이 의학적으로 타당한지 한 번 더 확인하는 절차다.

경인남부지역 업무상질병판정위원으로 활동하는 한 노무사는 “임상의 중 1명이라도 노동자가 신청한 질병에 대해 산재로 인정할 정도의 질환은 아니라고 판단해버리면, 이후 업무 연관성 논의는 진행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며 “의사마다 판단이 다른 만큼 임상의 의견이 산재 인정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구조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통상 1~2시간의 회의 동안 30건 안팎의 안건을 처리하다 보니 충분한 토론이 이뤄지지 못할 때도 있다”고 했다.

■ 업무와 질병의 연관성, 폭넓게 따져야

질판위에서 의학적 판단에 치우친 심의 구조를 개선하고, 업무와 질병의 연관성을 보다 폭넓게 살필 수 있는 판단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4월 국회 기후환경노동에너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주영(김포갑) 의원이 대표발의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개정안’은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판단할 때 ‘사회통념에 따라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인정할 수 있다’는 기준을 법률에 명문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개정안은 현재 기후환경에너지노동위원회 심사 중이다.

대법원은 1990년대 이후 의학적으로 완벽히 증명되지 않더라도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인정되면 산재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 법리는 판례에 있을 뿐 법령에는 명시돼 있지 않아 질판위 심의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노동자는 의학적 인과관계를 완벽히 입증하지 않더라도 근무 환경과 업무 강도 등 다양한 상황을 근거로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게 된다.

2023년 대법원은 약 5년간 콜센터 상담원으로 근무하다 뇌출혈을 진단받은 노동자의 산재 사건에서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처분을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는 의학적으로 명백하게 증명되지 않더라도 근무 환경과 업무 내용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상당한 관련성이 인정되면 산재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은복 건강한노동세상 대표(노무사)는 “질판위 구성에 상병을 판단하는 임상의보다는 작업환경의학과 의사 등 노동 환경과의 연관성이 고려될 수 있도록 위원 비율이나 위원회 운영 방식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며 “근무 환경 등 다양한 사정을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내용이 법률에 명문화되면, 자연스레 질판위 위원 구성도 바뀔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송윤지기자 sso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