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전쟁과 평화, 근대문화유산
남방한계선 2㎞, 파주 민통선 유일 미군기지
휴전후 50여년 머물던 506연대 2004년 철수
2007년 반환, 활용 두고 정부·道·파주시 이견
1950년 6월 25일은 한반도, 그리고 경기도의 많은 것을 바꿔놨다. 접경 지역을 품은 경기도만의 독특함, 오랜 난제 등은 한국전쟁과 함께 생겨났다. 그 중 하나가 주한미군 주둔에 따른 변화상이다. 경기도 곳곳에 들어선 미군기지는 그 지역의 산업, 문화를 만들어냈고 떠나간 자리엔 환경 문제, 도시의 쇠락 문제 등 짙은 그림자를 남겼다.
미군 반환 공여구역의 개발 문제는 현 정부, 그리고 경기도의 현안 중 하나다.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은 경기북부 타운홀 미팅을 통해 미군 반환 공여지 개발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정 방안을 제시했다. 경기도 역시 매년 300억원씩 총 10년간 3천억원 규모의 별도 기금을 조성해, 반환 공여지 개발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 지역 등 지원 특별법’이 제정된 지 올해로 20년째. 정부와 경기도의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외침에도 여전히 도내 미군기지들의 온전한 반환과 개발은 지지부진하다.
다수의 기지 중 파주 캠프 그리브스는 민간인통제구역 내 유일한 미군 반환 공여지다. 비교적 성공적인 개발 사례로 평가받는데, 당시의 모습이 잘 보존돼있어 지역을 대표하는 근대문화유산으로도 각인돼 있다. 76번째 6월 25일을 앞두고 찾은 캠프 그리브스는 1950년과 2026년 사이에 놓인 채였다.
■ 내년이면 반환 20주년…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 충분
1953년 조성된 캠프 그리브스는 DMZ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2㎞ 떨어진, 파주 민통선 내 유일의 미군기지다. 경기도에 가장 먼저 조성된 미군기지가 1951년 무렵 주둔을 시작했던 점을 고려하면, 캠프 그리브스는 도내 미군기지 중 매우 오래된 기지에 속한다. 미국의 전쟁 영웅인 클린턴 그리브스 하사의 이름에서 명명됐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50여년간 미군 2사단 506연대가 머무르다, 2004년 해당 부대가 철수한 이후 방치, 2007년 한국 정부에 반환됐다. 내년이면 반환 20주년을 맞는다. 반환 이후 활용 방안을 두고 정부와 경기도, 파주시간 이견이 지속됐다. 정부에선 군사시설로 사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됐고, 경기도와 파주시는 DMZ 일대를 평화생태·문화의 공간으로 구축해야 한다면서 캠프 그리브스를 그 중심 장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안보 체험 공간으로 구축키로 하고 부지 일부가 일반에 개방됐다. 2013년 12월 14일이었다.
50여년 전 미군 부대의 모습을 간직해 그 자체만으로 보존의 가치가 있고 건축 양식 또한 전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양식을 갖고 있어 근대문화유산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DMZ의 독특한 생태, 임진강의 아름다운 경관이 어우러진 점도 그 가치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단적인 예로 캠프 그리브스엔 여느 미군 기지들처럼 반원 모양의 ‘퀀셋 막사’가 다수 있다. 한국전쟁 직후 주둔하던 미군들이 임시 사용을 목적으로 쓰던 막사인데, 빠르게 설치하고 철거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캠프 그리브스에선 숙소뿐 아니라 무기고, 사무실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는데 여러 퀀셋 막사들의 원형이 잘 보존돼있다. 지난해 10월 일반에 개방된 탄약고는 하늘에서 바라봤을 때 쉽게 발견되지 않도록 마치 산 능선처럼 만든 게 특징이다. 내부는 습기가 차지 않도록 자연 환기가 잘 되게끔 구조가 짜였는데, 이 같은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옛 미군 기지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갖고 있다보니 지난 2016년 방영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쓰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1970년대를 그린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가 이곳에서 촬영되는 등, 시대극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빠른 설치·철거 ‘퀀셋 막사’ 건축양식 고스란히
태양의 후예·메이드 인 코리아 등 시대극 배경
갤러리·체험공간 ‘미래 지향점’ 보여주는 유산
■ 대립의 공간에서 평화·문화의 공간으로
현재 캠프그리브스는 총 부지면적의 33%(3만9천여㎡)가 개방된 상태다. 일반에 공개된 대부분의 공간은 한국전쟁과 주한미군 관련 내용과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를 통해 캠프 그리브스가 위치한 DMZ의 의미, 분단 국가인 우리나라의 현실, 한국전쟁이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평화의 소중함 등을 관광객들이 한번 더 생각하게끔 한다.
과거 볼링장으로 사용됐다가 지금은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 ‘갤러리 그리브스’가 대표적이다. 한국전쟁 발발 73주년을 앞둔 지난 20일 캠프 그리브스를 찾았을 때, 갤러리 그리브스에선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학도병들의 이야기 등이 조명되고 있었다. 고작 열 여섯 살 중학생이었던 학도병 이우근이 어머니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도 볼 수 있었다.
예술 작품들도 다수 전시돼 있었다. 탄약고 중 한 곳에는 연진영 작가의 업사이클링 작품인 ‘주름진 서식지’가 설치돼 있었는데, 해당 작품은 미군이 사용했던 막사와 텐트, 담요 등 군용 물품을 재조합해 만든 것이다. 생존에 대한 열망,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다는 긴장의 흔적들을 여러 생명이 공존하는 서식지로서 재해석했다는 설명이다. 언뜻 차가워 보이는 주름진 은빛 표면 안엔 온기, 희망이 깃들어 있다는 것. ‘휴전’ 상태에서 DMZ를 사이에 두고 여전히 총칼을 겨누고 있지만, 그 사이 다양한 생명들이 움트고 숨쉬고 있는 모습과 닮아있다.
캠프 그리브스에서 주둔했던 미군들의 사무실 모습 등을 재현해두기도 했다. 즉석에서 사진을 촬영해 인쇄해주거나 마치 그 시절 미군이 된 듯 젠가를 즐길 수 있게 하는 등 관광객들이 보다 흥미롭게 캠프 그리브스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게 특징이다.
캠프 그리브스는 과거의 시간을 품은 근대문화유산이 현재에 남아, 우리가 미래에 지향해야 할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다.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간직해야 하는 이유는 그 유산이 품고 있는 시간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 나아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대립의 칼끝에서 평화와 문화의 공간으로 재탄생한 캠프 그리브스는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참상이 지속되는 현 시점에 울림을 가져다준다. 가깝게는 미군 반환기지 개발의 성공적인 모델로서, 오랜 시간 경기도가 안고 있던 문제에 관한 교보재로서도 시선을 모은다. 아직 베일에 가려진 곳이 더 많은 캠프 그리브스는 여전히 새로움을 안고 있다. 70여년전의 공간이 또 어떤 모습으로 미래를 마주할지 기대되는 이유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