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 오는 듯’… 1238년 작품 속 단옷날 그네 타는 풍경
이규보 시편서 ‘나라 풍속’ 강조
여름 잘 나기 바라며 부채 선물
농악 성행·오일장 씨름판 열려
음력 5월5일, 단옷날이 낀 지난주에는 전국 각 지역마다 단오 행사가 시끌벅적하게 펼쳐졌다. 그네 타기, 씨름, 농악과 같은 단오 행사들은 우리나라의 아주 오래된 명절 풍습이다. 고려시대 왕도였던 강화에도 한 나라의 수도다운 강화 나름대로의 단오 행사가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화의 단오 행사는 제법 규모 있게 펼쳐졌으나 최근 몇 년 사이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중히 여기던 명절답게 단오와 관련한 말도 참으로 많다. 단오는 단양이나 친중절이라고도 한다. 단오에 해 먹는 떡을 단오떡이라고 하고 단오에 액을 물리치기 위해 문기둥에 붙이는 부적을 단오 부적이라 한다.
단오에는 여름을 준비하는 의미로 부채를 만들었는데 이를 단오 부채, 혹은 단오선(端午扇)이라 했다. 단오에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고, 남자들은 씨름을 했다. 이때 여자들은 악귀를 쫓기 위한 치장으로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고, 창포 뿌리로 만든 비녀를 꽂았다. 이를 단오장(端午粧)이라 했다.
개성에서 강화로 도읍을 옮긴 지 6년이 지난 1238년, 강화도에서 단오에 여성들의 그네 뛰는 장면이 이규보의 시편으로 전한다. 이규보의 나이 71세 때였다. ‘단오에 그네를 뛰는 아낙네를 보며’라고 제목을 달고 부제로 ‘나라 풍속에 반드시 단오에는 이 놀이를 했다’고 적었다. 여성들이 단오에 그네를 타는 게 나라의 풍속[國俗]이라고 강조한 점이 흥미롭다.
//밀 때는 선녀가 달나라로 가는 듯/돌아올 때는 선녀가 하늘에서 오는 듯/쳐다보니 뛰어오를 땐 땀방울 흘리더니/금방 펄렁이며 되돌아오는구나/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다 말을 마소/베 짜는 북처럼 왔다갔다 하네/아마도 꾀꼬리가 좋은 나무 고르려고/날아왔다 날아갔다 하는 것인가//
일흔이 넘은 노 시인에게 단오에 그네 타는 여성은 하늘을 나는 선녀처럼 보였고, 베틀의 북 같기도 했고, 집짓기에 좋은 나뭇가지를 골라 물고 분주히 오가는 꾀꼬리로 느껴졌다.
고려 때 단오에는 조상 묘에 성묘하는 풍습이 있었으며, 여름을 잘 나기를 바라는 의미로 부채를 선물하는 풍속도 있었다. 이규보의 시 중에는 단오 부채를 읊은 것도 있다. ‘본성(本省)에서 보낸 학령선(鶴翎扇)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란 제목의 시다. 여기 ‘본성’은 고려시대 최고 행정관청인 중서문하성을 말한다. ‘학령선’이란 날개를 편 학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부채 이름이다. 이 시를 남긴 때가 이규보의 나이 74세이던 1241년 강도 시기이다.
이규보의 시처럼, 고려 때는 궁중이나 관청에서 단오절에 부채를 나누어 주었으며 친구나 가까운 사람끼리 부채를 주고받았다. 요새로 친다면, 여름을 앞두고 선풍기 하나씩 선물했던 셈이다. 하지만 국어사전에서는 ‘단오 부채’를 ‘조선시대에, 임금이 단오절에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던 부채’, 혹은 ‘단오에 임금에게 진상하던 부채.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신하와 서울의 각 관아에 나누어 주었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단옷날 부채 선물은 조선시대에 생긴 풍습처럼 인식할 수밖에 없다. 고려시대 단오절 부채 선물 풍속을 살피다 보니, 오늘날 국어사전의 ‘단오 부채’ 설명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겠다 싶다.
강화와 함께 고려의 왕도였던 개성에서도 단오는 연중 최대 명절이었다. 송경록의 ‘북한 향토사학자가 쓴 개성 이야기’를 보면, 개성에서는 단옷날 추궁(경덕궁)의 큰 느티나무에 그네를 매고, 마당 한복판에는 씨름판을 만들었다. 여인들은 그네를 뛰고, 남자들은 황소를 걸어 놓고 씨름을 했다. 씨름꾼들은 개성 근방뿐만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타 지역에서도 많이 모여들었다.
개성을 포함한 북한 지역의 고려시대 단오놀이 풍습이 가미돼 전승되어 왔을 강화 지역에도 농사철인 단오 농악이 동네마다 성행했으며, 소를 걸어 놓고 하는 씨름도 단오 오일장에 맞추어 열렸다고 노인들은 증언한다.
이득환(72) 숭조회(崇祖會) 이사장은 “젊었을 때 단옷날 오일장에 가면 씨름판이 크게 벌어졌는데, 우승자에게는 송아지를 주었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또 “단오 즈음은 농사철이어서 동네 들판마다 농기(農旗)를 꽂아 놓고 일을 했으며 힘들면 농악을 펼치면서 한바탕 놀고는 했다”면서 “그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강화 노인들의 기억이 더 사라지기 전,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며 강화에서 행해지던 강화도만의 갖가지 단오 풍속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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