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시간, 세 개의 장소
불친절은 죄가 아니다. 위임장을 받아주지 않은 것도, 부검 동의를 구할 방법이 없다고 한 것도 절차 위반은 아니다. 법은 무엇을 했는지 묻지만 어떻게 했는지는 묻지 않는다.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이라서 한 번 더 설명해주고, 한 번 더 기다려주고, 한 번 더 물어봐주는 일은 어떤 법에도 의무로 적혀 있지 않다. 그 ‘한 번’을 사람들은 감수성이라 부르지만 ‘몰감수성’은 죄가 되지 않는다.
사고 다음 날 찾아간 경찰서. 사흘 뒤 한국과 베트남에 동시에 차려진 두 개의 빈소. 한 달 뒤 동생이 다시 찾은 사고 현장. 그 세 곳에서 목격한 것은 법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한 가족이 먼 거리 때문에 외롭게 버텨야 했던 석 달의 시간이었다.
누구도 절차를 어기지 않았다는 그 말은 결국, 누구도 더 살피지 않아도 됐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첫 번째 시간, 위임장이 되돌아온 자리
해외 가족 있다는 사정이 ‘유족 없음’ 처리
부검·영장 절차 진행… 판단 기회도 안 줘
3월11일 오후 1시20분께 이천경찰서. 사고가 난 지 만 하루가 지났을 때였다. 뚜안씨의 사촌 누나 린(24)씨와 유족을 대리하기로 한 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 활동가들은 위임장을 들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베트남에 있는 부모가 린씨와 활동가들에게 권한을 맡긴다는 내용이었다. 먼 나라에 있는 부모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의 의사 표시였다.
서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담당 수사관은 위임장을 도로 내밀었다. “이건 저희한테 제출하는 게 아니에요.” 사건은 경기남부경찰청 중대재해 전문 수사팀으로 넘어갈 예정이고 시신도 부검이 잡혀 있어 곧바로 인수할 수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수사관의 말은 절차상 틀렸다고 단정하기 어려웠다. 변사 사건과 업무상 과실치사 사건은 따로 접수돼 있었고, 현장을 직접 비추는 CCTV가 없고 사고 순간을 본 목격자도 없어 사인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이유로 부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국외에 있는 유족에게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자세히 설명하고 의견을 확인하려 했는지였다. 가족이 베트남에 있다는 사정이 곧바로 ‘유족 없음’으로 처리되는 순간, 유족은 아들의 죽음 앞에서 가장 늦게 도착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유족에게 부검 동의 여부를 물었나요.” 담당 수사관은 “유족이 없으니까 확인이 될 수가 없어요”라고 답했다. 야간이라 대사관과 연락이 닿지 않았고 한국 안에는 직계 가족이 없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때 활동가가 말했다. “한국인이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요.” 수사관은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가 곧 “외국인이니까 확인이 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두 문장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절차는 같다고 했지만 그 절차에 닿는 속도는 같지 않았다.
린씨는 사촌이었다. 수사관은 직계 가족이 아니면 유족 진술의 의미가 크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린씨가 들고 온 위임장은 단순한 친척의 방문이 아니었다. 부모가 한국에 올 수 없는 상황에서 아들의 시신과 절차를 확인해달라고 맡긴 절박한 호소였다.
유족의 의견을 뒤늦게라도 반영할 방법이 없느냐는 항의가 이어지자 수사관은 남은 방법은 검사를 직접 찾아가 설득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이미 서류는 완성됐고 영장도 나왔다고 했다. 사고 소식을 들은 지 하루 만에 한국어도 한국의 절차도 낯선 가족은 검찰청을 찾아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부검이 왜 필요한지 설명을 듣고 판단할 기회보다, 이미 정해진 절차를 멈춰달라고 호소해야 할 필요가 먼저 건네졌다.
경찰서를 나설 때도 위임장은 여전히 그들의 손에 있었다. 가족의 죽음을 확인하고 시신을 보고 부검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장례를 준비해야 할 사람들은 가장 마지막 순서로 밀려나 있었다.
#두 번째 시간, 닿지 못한 마중
사고 후 과정 못 들어… 활동가 통해 확인
국내 직계가족 없으면 귀향 절차도 ‘문턱’
이틀 뒤인 3월13일 빈소가 두 곳에 차려졌다.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장례식장과 베트남 북중부 응에안의 한 마을이었다. 한국에서는 부검과 시신 인도 절차가 남아 있었고 베트남에서는 가족과 이웃들이 먼저 빈소를 차렸다.
린씨가 휴대전화 속 사진을 보여줬다. 어두운 마당에 불이 켜져 있었고 친척과 이웃들이 모여 있었다. 고향 사람들은 먼 나라에서 숨진 뚜안씨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모는 아들의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사진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부모는 사고 이후의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없었다.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시신이 어떤 상태인지, 부검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언제 고향으로 데려올 수 있는지를 한국에 있는 린씨와 활동가들을 통해 전해 들어야 했다.
산재 사망 사건에서 부검은 사인을 밝히기 위한 절차다. 그러나 수사기관에는 사인 규명의 과정이지만 가족에게는 아들을 어떤 모습으로 마지막 배웅할지 결정하는 문제였다. 한국어가 서툴고 한국의 수사 절차를 알기 어려운 유족에게 그 과정은 더 멀었다.
당시 빈소를 지키던 린씨는 “동생을 최대한 빨리 베트남으로 데려갈 수 있도록 법적 지원과 필요한 모든 도움을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부검 결과는 ‘다발성 손상에 따른 출혈’이었다. 시신은 안치실에 머물렀다. 직계 가족이 한국에 없다는 사정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절차 앞에서도 또 다른 문턱이었다. 베트남의 빈소에는 친척과 이웃들이 모였지만 장례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세 번째 시간, 다시 그 자리에서
생일 맞아 이천 공장 찾아온 동생 뚜씨
영상통화로 숨진 자리 본 아버지 ‘오열’
한 달 뒤인 4월10일 동생 뚜씨가 한국 땅을 밟았다. 그날은 형의 생일이었다. 뚜씨는 곧장 형이 숨진 이천의 공장으로 향했다. 케이크 대신 하얀 국화꽃을 들고서였다.
사측은 언론의 현장 출입을 막았다. 기자라는 신분으로는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방법은 뚜씨의 곁을 지키기로 한 이주인권 활동가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안전 덮개 하나 없는 기계 아래로 노동자 혼자 들어가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그 기계를 눈으로 봐야 비로소 실감됐다.
컨베이어벨트는 천장까지 닿을 듯 거대했다. 멈춰 있었지만 위협적이었다. 뚜씨는 벨트 앞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꽃을 내려놓고 성호를 그었다. 그러고는 벨트 아래로 들어가 형이 쓰러졌던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향이 없었다. 대신 담배에 불을 붙여 놓아뒀다. 휴대전화를 꺼내 베트남에 있는 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했다. 아들이 숨진 자리를 화면으로 마주한 아버지는 오열했다. 직접 올 수 없었던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에 닿을 수단은 그 작은 화면뿐이었다.
공장 뒤편 숙소동, 형이 쓰던 방에서 뚜씨는 모자와 목걸이를 찾아 주머니에 넣었다. 잠시 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故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찾아왔다. 그는 말없이 뚜씨를 꼭 안아줬다.
공장 앞에서 뚜씨는 말했다. “기계가 너무 크고 안전장치도 카메라도 없었어요.” 그리고 덧붙였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나 한국 사람 모두가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이런 억울한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해주세요.” 형을 향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형이 편히 쉬었으면 합니다. 형이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한국 땅에 있는 모든 노동자들을 잘 보살펴줬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자리, 하늘 아래 다른 죽음의 벽
한 장 위임장이 인정받지 못했던 경찰서, 언론에 끝내 닫혀 있던 공장. 누구도 법을 어기지 않았다. 수사관은 규정대로 답했고 회사는 일정대로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도 뚜안씨의 가족은 석 달 내내 가장 먼 자리에서 닫힌 문 앞에 서 있어야 했다.
그 거리는 서류로 좁혀지지 않았다. 유족이 다른 나라에 있다는 사정 하나가 위임장의 효력을 의심받게 했고, 부검 동의 의사를 지워버렸고, 시신 없는 빈소를 남겨둔 채 기다리게 만들었다. 법은 이 모든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선을 넘지 않았다. 다만, 그 법 안에 뚜안씨 가족의 자리가 없었을 뿐이다.
■ 뚜안씨는 왜, 어떻게 숨졌나
작동중인 컨베이어 2인1조 원칙 미이행
비상 정지버튼 실종, 어디에도 없는 안전
베트남 청년노동자 응우옌 반 뚜안(23)씨는 지난 3월10일 새벽 이천시 호법면의 한 자갈·모래 제조 공장에서 컨베이어벨트 설비를 점검하던 중 팔이 기계에 끼여 숨졌다. 설비 오류로 상급자 지시를 받은 뚜안씨가 혼자 점검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당시 컨베이어벨트는 작동 중이었고 안전 덮개와 비상정지버튼은 없었다. 2인1조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뚜안씨는 6남매 중 장남으로 동생들 학비를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 사고 이후 유족의 부재는 여러 문제로 이어졌다. 직계 가족이 없어 부검 동의 절차가 생략됐고, 유족을 대리한 활동가들은 직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진술 자격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를 계기로 지난 9일 경기도의회는 전국 최초로 ‘산업재해 사망 외국인노동자 유가족 지원 조례’를 의결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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