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서가 가로챈 ‘사건의 진실’… 존엄마저 이방인으로 남았다

경인일보는 이주노동자 사망사건 이후 현장에서 유족 등을 지원해온 활동가와 법률가 등 5명에게 해외에 거주하는 유족을 돕는 과정에서 마주한 문제점을 물었다. 국경 밖 유족이 한국의 수사·장례·보상 절차에서 권리 주체로 서기 어렵다는 진단이 공통적이었다.

유족이 현지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회사는 졸속 합의를 시도하고 이를 노리는 브로커가 가족에게 접근한다. 언어와 거리, 서류의 시간차가 겹치면서 사망 사건은 진상규명의 대상이 아니라 서둘러 마무리해야 할 부담스러운 문제로 취급된다.

# 진상규명보다 먼저 놓이는 합의서

산재 사망 이후 유족이 가장 먼저 알고 싶은 것은 보상액이 아니다. 고인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다. 그러나 유족이 한국에 없으면 이 질문은 쉽게 뒤로 밀린다. 회사가 합의를 제안하는 순간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문제는 배상 문제로 좁혀진다.

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 이용덕 활동가는 2024년 11월 화성시 싱크대 제조공장에서 숨진 라오스 노동자 위쑥씨, 지난해 8월 화성시 플라스틱 제조공장에서 숨진 네팔 노동자 디와즈 타망씨, 지난 3월 이천에서 숨진 뚜안씨 사건에서 비슷한 흐름을 봤다고 했다. 그는 “유족들은 고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진실을 알기 원한다. 보상은 두 번째”라며 “해외에 있어 그 뜻을 전달하기 어려운 사이 회사가 먼저 접근해 빠른 합의를 종용한다”고 언급했다.

뚜안, 스물셋 죽음 뒤의 벽 | 경인일보

뚜안, 스물셋 죽음 뒤의 벽 | 경인일보

불친절은 죄가 아니다. 위임장을 받아주지 않은 것도, 부검 동의를 구할 방법이 없다고 한 것도 절차 위반은 아니다. 법은 무엇을 했는지 묻지만 어떻게 했는지는 묻지 않는다.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이라서 한 번 더 설명해주고, 한 번 더 기다려주고, 한 번 더 물어봐주는 일은 어떤 법에도 의무로 적혀 있지 않다. 그 ‘한 번’을 사람들은 감수성이라 부르지만 ‘몰감수성’은 죄가 되지 않는다. 사고 다음 날 찾아간 경찰서. 사흘 뒤 한국과 베트남에 동시에 차려진 두 개의 빈소. 한 달 뒤 동생이 다시 찾은 사고 현장. 그 세 곳에서 목격한 것은 법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한 가족이 먼 거리 때문에 외롭게 버텨야 했던 석 달의 시간이었다. 누구도 절차를 어기지 않았다는 그 말은 결국, 누구도 더 살피지 않아도 됐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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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서에 서명하면 유족이 요구할 수 있는 범위는 줄어든다. 뚜안씨 사건에서 유족의 법률 대응을 맡았던 법무법인 지암 이환춘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는 “충분한 정보 제공, 법률적 조력을 기초로 배·보상 협의에 임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어느 정도의 범위로 가능한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도 없이 협의에 나서게 된다”고 말했다. 산재 신청과 형사 절차, 합의 뒤 제한되는 권리를 충분히 알지 못한 채 협상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위쑥씨와 타망씨 사건이 그랬다. 이용덕 활동가는 “경찰은 회사와 유족이 합의했다는 이유로 사건을 빠르게 종결시키려 한다. 노동인권단체들은 개입할 수 없게 되는데, 진상규명도 어려워지고 재발방지대책 마련도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지만 합의 종용

서명땐 요구범위 줄고 권리 모른채 협상 시작

설명 책임 공적 주체 불투명, 브로커 먹잇감

지난 3월18일 경기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박희은 경기이주평등연대 집행위원장(왼쪽),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가운데), 김진희 민주노총 경기도본부장 등이 뚜안씨 영정을 들고 산재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2026.3.18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지난 3월18일 경기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박희은 경기이주평등연대 집행위원장(왼쪽),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가운데), 김진희 민주노총 경기도본부장 등이 뚜안씨 영정을 들고 산재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2026.3.18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 유족의 혼란을 파고드는 브로커

해외에 거주하는 유족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정확한 설명이다. 한국에서 어떤 절차가 진행되는지, 누구에게 권한을 맡겨야 하는지, 회사와 합의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 설명을 책임지는 공적 주체는 뚜렷하지 않다. 그 자리에 브로커가 들어온다.

누군가가 숨졌다는 소식은 같은 국가 출신 이주노동자 커뮤니티 안에서 빠르게 퍼진다.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장은 “브로커가 나타나 통역도 고용하고 변호사도 고용해 가족한테 다가간다. 죽은 노동자의 지인이 그 커뮤니티 안에 있고 그 지인이 부모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 브로커는 그 사람을 통해 가족에게 연락한다”고 전했다. 브로커가 고용한 통역은 유족의 이익이 아니라 브로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유족은 그 통역이 전하는 말이 전부다.

가족 입장에서는 누가 믿을 수 있는 조력자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한국말을 모르고 한국의 제도도 모른다. 이환춘 변호사는 “통역·법률 지원이 없는 경우 해외에 있는 유족은 한국 사정을 전혀 알 수 없고, 이런 틈을 노린 브로커들이 개입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욱이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불법 체류자라 보상받기 어렵다’는 식의 잘못된 설명으로 낮은 금액의 보상을 토대로 합의를 유도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브로커 문제는 개인의 악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공적 지원 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누구든 먼저 유족에게 닿는 사람이 사건의 방향을 좌우한다. 공무원도 대사관 직원도 아닌 사람이 갑자기 도움을 말하면 유족 입장에서는 의심할 수밖에 없고 이미 신뢰를 선점한 브로커 쪽으로 기울기 쉽다.

# 내국인 기준 절차가 만드는 배제

같은 절차라도 누구에게 적용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수사기관과 행정기관은 절차를 말하지만, 그 절차는 대개 유족이 한국에 있거나 곧바로 연락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놓여 있다. 해외 유족은 그 전제 밖에 있다.

소금꽃나무의 장혜진 노무사는 뚜안씨 사고 다음 날 경찰서에서 부검 절차를 두고 문제를 제기했다. 산재 사망사건에서 부검이 필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유족에게 최소한의 설명과 의견 청취가 있었는지를 묻는 자리였다.

장혜진 노무사는 “시신이 심각하게 훼손된 끼임 사고였는데 유족 의견을 한 번 확인조차 하지 않고 부검을 진행하려 했다. 당시 경찰이 ‘관행화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해 놀랐다. 죽음 이후에도 그야말로 차별이 지속되는 것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이용덕 활동가도 “한국인 사망자의 경우 가족에게 부검 의견을 묻기라도 하지만 이주노동자는 유족이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제대로 묻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내국인 유족에게는 절차의 한 단계로 지나갈 일이 해외 유족에게는 권리 행사 자체를 막는 장벽이 된다. 현장 조사에 참여하지 못하면 사고 경위를 직접 확인할 수 없고, 수사기관이나 회사를 상대하려 해도 권한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네팔 출신으로 한국에서 활동 중인 우다야 라이 민주노총 이주노조 위원장은 “사고 현장에 가서 알아보려 해도 위임장이 없으면 회사·경찰을 상대하기가 어렵고, 위임장이 없는 경우 진상규명과 장례 절차를 진행하기도 쉽지 않다”며 “법적 대응이나 합의 과정에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도 비용 문제 등으로 어렵다”고 꼬집었다.

# 입국해야 시작되는 애도와 대응

유족이 한국에 없다는 말은 장례식장에 앉을 사람이 없다는 뜻만이 아니다. 사고 이후 벌어지는 모든 절차에서 유족의 힘이 원천적으로 약해진다. 장혜진 노무사는 이를 “개입력의 원천적 차단”이라고 표현했다.

해외 유족은 사고 경위, 수사 상황, 산재 신청, 배상 협의, 장례 절차를 통역을 거쳐 들어야 한다. 기본 서류를 받는 데 한 달 이상 걸리는 게 기본이다. 인터넷도 팩스도 안 되는 환경에서는 소통 자체가 느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입국은 애도의 시작이자 유족이 권리 주체로 설 수 있는 출발선이다.

장혜진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 등이 유족이 한국에 상주하거나 즉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다 보니까 그렇지 않은 환경에 있는 죽음 같은 경우에는 일처리를 하면서 난관이 많이 발생한다”고 떠올렸다.

이환춘 변호사도 “한국인을 기준으로 한 정보 제공이면 충분하다는 태도가 문제”라며 “뚜안 사건의 경우 친척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적기는 했지만 직계 유족이 아닌 탓에 유족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 또 필요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유족이 입국하면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사고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다. 수사기관에 묻고 장례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 회사와 마주 앉는 것도 그때서야 가능하다. 그 입국을 가능하게 할 항공료와 체류비, 비자 발급, 통역 지원이 없으면 그 가능성조차 열리지 않는다.

근로기준·산업안전보건법 등 내국인 중심

유족 입국해야 현장 방문·장례 결정 가능

항공료·통역 지원 등 없으면 가능성 희박

지난 3월18일 경기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장혜진 노무사(가운데), 김미숙(오른쪽) 김용균재단 대표 등이 산재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2026.3.18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지난 3월18일 경기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장혜진 노무사(가운데), 김미숙(오른쪽) 김용균재단 대표 등이 산재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2026.3.18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 고인의 존엄이 비용에 막힐 때

장례는 애도의 절차이면서 사건을 사회에 드러내는 공간이다. 빈소가 차려지면 조문객이 오고 활동가와 기자들이 모인다. 빈소가 없으면 사건은 안치실과 행정 절차 안에서 조용히 정리된다.

이용덕 활동가는 “유족이 한국에 없다 보니 장례식장에 올 사람이 별로 없고 외롭고 쓸쓸하게 장례를 치러야 한다. 비용도 문제인데, 회사가 지원하지 않으면 막대한 장례 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그냥 안치실에 두거나 장례 절차 없이 시신이 송환되길 바라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존엄한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현실이 유족을 서둘러 합의 쪽으로 내몬다.

양한웅 위원장은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사례를 꺼냈다. 회사가 장례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가족도 올 수 없는 상황에서 시신은 그대로 안치실에 방치됐다. 부검 뒤 장례식장 계약이 이뤄져야 시신을 닦고 온전하게 만드는 절차가 진행되는데, 그 과정이 생략된 채 시신은 비닐에 감긴 상태로 냉동고에 보관돼 있었다고 했다. 영사가 유족의 위임을 받아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가족 입장에서는 국가기관에서 연락이 왔으니 따를 수밖에 없다. 빈소 없이 화장한 뒤 유골만 본국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정리된다.

뚜안씨 사건처럼 언론이 주목한 경우는 예외에 가깝다. 양한웅 위원장은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 죽음들이 더 많다. 양식장에서 돌아가신 분, 농사짓는 데서 돌아가신 분, 농어촌 비자 받고 오신 분들…. 최소한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가 없으면 그냥 돌아가신 노동자들은 아무도 모르게 처리된다”고 덧붙였다.

반세기 전 타국에서 일하던 한국의 노동자와 국내에 남은 가족들도 같은 벽 앞에 섰다. 세월이 흘러 한국의 위상은 달라졌으나, 그 경험은 오늘날 한국에서 숨진 이주노동자의 해외 유족에게 충분한 설명과 지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고인의 존엄과 유족의 권리가 우연한 조력에 기대는 현실에서 사회의 책임을 물어야 할 사건은 그렇게 개인의 불운이라는 말로 덮이고 있다.

그래픽/박성현기자pssh0911@kyeongin.com/챗gptAI·제미나이AI이미지 재가공
그래픽/박성현기자pssh0911@kyeongin.com/챗gptAI·제미나이AI이미지 재가공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