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순기 前 경기북부경찰청 공공안전부장
곽순기 前 경기북부경찰청 공공안전부장

최근 수사 현장에서 ‘묻지마 고발’이 급증하고 있다. 고발인 조사를 진행하면 대부분 뚜렷한 증거 없이 방송이나 유튜브·SNS를 보고 고발했다고 한다. 정의감에서 비롯된 경우도 있지만, 이익단체 활동·자기과시·정치적 이용 등 고발 본래의 취지를 외면한 사례가 상당하다. 특히 법왜곡죄가 신설되자 법률 내용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그럴 것 같다’는 막연한 이유만으로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결과는 대부분 각하다. 그러나 그 사이 피고발인이 입는 훼손된 명예는 회복되지 않으며 수사 인력과 시간은 소진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친고죄·반의사불벌죄 영역에서의 남용이다. 이 제도들은 개인적 법익의 처분권을 피해자에게 부여해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지 않도록 설계된 것이다. 그런데 피해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제3자가 정치적 목적으로 고발해 수사가 개시되고, 피해자는 원치 않는 공론화로 2차 피해를 입기도 한다. 피해자 보호라는 제도 본래의 취지가 훼손된 것이다.

독일은 신고와 고소를 엄격히 구분하며 친고죄의 경우 피해자의 고소 없이는 수사개시 자체가 불가능하다. 성추행·모욕·주거침입 등 개인적 법익에 관한 대부분의 범죄가 친고죄에 해당한다. 또한 고발 남용 시 허위신고죄로 역고소가 가능하며 실제 적용사례도 다수 존재해 무분별한 고발에 대한 실질적 억제력으로 작동한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누구든지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할 수 있다’고만 규정하여, 친고죄 사건에서도 제3자의 고발로 수사가 개시되는 구조적 허점을 방치하고 있다. 수사가 결국 무위로 끝나더라도 피고발인이 입는 사회적 낙인과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는 회복되지 않는다. 고발제도의 공익적 기능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친고죄·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 범죄만큼은 독일처럼 제3자 고발 시 피해자 동의를 요건으로 명문화하고 고발장에 최소한의 소명자료 첨부를 의무화해야 한다. 피해자 의사가 절차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 이제는 입법으로 못 박을 때다.

/곽순기 前 경기북부경찰청 공공안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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