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이었던 친구들과 떠난 통영
화창한 날씨에 매카트니의 음악
‘60개의 이야기’란 책을 읽던…
그들은 헤어졌지만 기억 떠올라
이번 여름에는 떠나지 못할 것 같다. 짧은 여행이야 하겠지만 여름마다 나름 길다면 길게 떠났던 여행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포기했다. 그래서 지나간 여행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다. 그 여행은 두 가지, 아니 세 가지로 의미가 있었다. 마지막 의미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알았지만.
나는 자동차에 타고 있다. 통영에 가는 길이었다. 내 친구들, 남자와 여자이고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이 앞좌석에 타고 있다. 나는 그 지역에 가야할 일이 생겼는데, 일 자체는 중요하지만 금방 끝나고 보수도 생길 일이었다. 친구들을 꼬드겨 며칠간 남도를 돌자고 나선 참이었다.
통영까지는 다섯 시간도 넘게 걸렸다. 전날도 늦게 잠든 나는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뒷좌석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었다. 커다란 나무가 도로의 좌우에서 녹색 캐노피처럼 그늘을 드리우고 날씨도 화창했다.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차 안에는 매카트니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두 연인은 서로의 손을 가볍게 잡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숲길에 비쳐드는 햇빛과 음악, 연인들의 공간 속에, 움직이는 장소이자 잠깐만 열렸다 닫히는 장면에 들어서 있었다. 그 특별한 친밀감, 나는 연애하는 부모를 본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두 사람이 나를 향해 나란히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 우리는 누군가의 작업실에서 주제도 소재도 종잡을 수 없는 대화에 몰두했다. 술도 없고 오로지 커피만 마시면서. 작업실에는 포스터와 세계문학전집, 책상과 스피커와 빈백과 주워온 테이블이 전부였다. 낡고 좁고 빛나는 곳이었다. 두 사람과 그렇게 앉아 주변 사물이 먹색으로 어두워질 때까지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대학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지저분한 동아리방과 비슷했고 대화도 비슷했으니까.
이윽고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내가 버스에 오르자 둘은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반팔 차림의 두 사람은 추워보였지만 씩씩하게 나를 배웅했다. 집으로 향하면서 주섬주섬 원래의 나로 돌아갔다. 할 일들의 리스트나 마음 한편의 걱정거리를 복기하고 있으려니 방금 전까지 대학생이었다가 갑자기 이십년쯤 시간이 흘러버린 느낌이었다.
다시 통영으로 돌아가 보자. 그때 내 손에는 디노 부차티의 ‘60개의 이야기’라는 책이 들려 있었다. 짧고 긴 육십 편의 소설이 실려 있었는데 다채롭고 놀라웠다. 첫 이야기의 주인공은 왕자, 두 번째는 산적, 세 번째는 환자였는데 하루에 한편씩 아침마다 읽었더니 나 자신이 차례로 왕자와 산적과 죽음을 앞둔 환자가 된 기분이었다. 근방에 맛있다는 빵집에 가서 아침을 먹으면서 내가 읽은 단편을 두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차에 올라 어디론가 게으르게 돌아다녔다. 연인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은-그들이 허락만 해준다면-굉장히 행복한 일이다. 두 사람의 오래된 관계에서 오는 평화나 안정감이 동심원처럼 퍼져나가 뒷좌석에 앉은 나까지 그 고리에 걸려 있는 느낌이었으니까. 나는 그들과 드라이브하는 것이 즐거웠다. 매일 디노 부차티의 단편을 읽는 것도 좋았다. 길과 책과 음악, 그리고 연인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공기. 지금도 책장에 꽂혀 있는 그 책을 보면 통영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얼마 후 그들은 헤어졌다. 한참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을 때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지만 둘은 결코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진짜였다. 나는 이상한 상실감을 느꼈다. 여전히 그들은 내게 중요한 친구지만 ‘둘로 된 한 쌍’과는 영영 이별이었으니까. 통영 여행은 셋이 한자리에 있는 마지막 순간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60개의 이야기’를 펼치면 오래된 사진처럼 맞잡은 그들의 손이 떠오른다. 책 속에 포개져 있어 사라지지 않을 하나의 기억으로. 영원히 젊고 사랑하는 두 사람으로.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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