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연 사회부 기자
유혜연 사회부 기자

허락받은 취재만으로는 결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스물셋, 뚜안씨 죽음 이후 오래 남은 것은 닫힌 문이었다. 위임장을 든 뚜안씨의 사촌누나 린씨와 활동가들은 경찰서 문턱에서 멈췄고, 베트남의 가족은 먼 곳에서 소식을 기다렸다. 직계가족이 아니고, 한국에 없고, 말이 통하지 않는 현실은 ‘어쩔 수 없다’는 말 속에 묻혔다. 죽음 뒤에도 벽이 있었다.

잠입취재로 본 것은 거대한 비밀이 아니었다. 당연하게 지나가던 부조리였다. 공장 천장까지 뻗은 거대한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끼임 사고’ 네 글자는 작았다. 노동자 홀로 그 기계 안으로 들어간 사실은 이 죽음을 불운으로만 둘 수 없게 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마지막 현장조차 영상통화로 봤다. 유골을 고국으로 보내는 일에서도 이 가족이 기댈 공적 절차는 희미했다.

취재 내내 마음에 걸린 것은 언론 보도가 놓이는 자리였다. 뚜안씨의 죽음은 알려져야 했다. 그래야 사고 원인을 묻고 필요한 도움도 모였다. 그러나 보도가 이어질수록 역설적으로 배·보상 협의 과정에서 사측의 압박으로 되돌아왔다. 책임을 묻는 말이 커질수록 국경 밖 유족이 감당해야 할 무게도 함께 늘어났다.

이들의 처지는 대한민국이 지나온 시간과도 겹쳤다. 반세기 전 한국은 독일의 탄광과 병원으로 노동자를 보냈다. 동포들은 타지에서 숨진 이들을 고향으로 보내려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어느덧 한국은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나라가 됐지만, 그 기억은 이주노동자의 유족에게 한 번 더 묻고 기다리는 태도로 충분히 돌아오지 못했다.

최근 제정된 경기도의 ‘외국인노동자 유가족 지원 조례’는 그간 미뤄온 책임에 대한 첫 응답이다. 타국의 유족이 홀로 감당해온 몫이 제도 안으로 들어오자 뚜안씨의 남동생 뚜씨는 “권리를 보호받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그 말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당연한 권리가 이토록 늦게서야 그에게 닿았다는 사실이 낯설고 미안했다. 조례는 마침표보다 출발점에 가깝다. 죽음 이후의 존엄이 국경 밖에 멈춰 서지 않도록, 닫힌 문을 여는 일이 이제 현장에서 시작된다.

/유혜연 사회부 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