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정치, 평택지원법·삼성유치 큰보람

반도체 생태계·문화 기반 확충까지 최선

새 리더십·시민 힘으로 더 큰 발전 응원을

정장선 평택시장
정장선 평택시장

정치에는 정년이 없다. 다른 직업은 정년이 있어 그 직업을 선택하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일할 수 있는지 대략 가늠할 수 있지만, 정치는 그렇지 않다. 나이 제한 없이 선거를 통해 선택받으니 그렇다. 하지만 물러날 때를 놓치는 정치인을 두고 흔히들 노욕(老慾)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래서 내가 있는 영역에 얼마나 더 머물지 고민하는 것은 정치인에게 중요한 숙제다.

‘언제까지 정치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오래 전부터 줄곧 해왔다. 결론은 ‘평택시장 재선까지’였다. 한창 변화하는 도시인 평택에는 일이 많아 시장을 더 오래 하면 지칠 것 같았다. 매너리즘에 빠질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불출마 뜻을 밝혔다.

돌이켜보면 참 긴 시간이었다. 31년 동안 정치를 했고 8차례 선거를 치렀다. 국회의원으로 12년 일하며 평택지원특별법을 만들고, 삼성전자 유치와 산업단지 조성의 기반을 마련했던 일은 정치 인생에서 큰 보람으로 남아 있다. 이후 4선에 도전하지 않고 시작한 평택시장의 길은 예상치 못한 난관의 연속이었다. 임기 초반에는 코로나 19로 시련을 겪었고 삼성전자가 어려워지며 세수가 급감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는 오르고 경제가 어려운데 지출은 늘어나는 ‘3중고’를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고덕신도시와 브레인시티는 평택의 미래 공간으로 자리 잡아갔고 KTX와 GTX, 광역 교통망과 버스 체계 개편으로 시민의 이동권과 도시의 연결성은 더 넓어질 수 있었다.

산업의 방향도 크게 바뀌었다. 평택은 이미 삼성전자의 도시였지만, 반도체 공장만으로는 미래를 말할 수는 없었다. 반도체 생태계를 더욱 확장하고, 다음 미래 먹거리를 생각해야 했으며, 교육·연구 기반도 필요했다. 그런 고민이 있어 반도체 밸류체인을 도시 안에서 확대하고 수소와 미래차 산업 추진, 카이스트와 국제학교 유치로 이어질 수 있었다.

산업적인 성장으로 평택은 최근 매년 한 단계씩 뛰어오른 평택의 지역내총생산(GRDP)이 경기도 내 3위로 100만이 넘는 수원, 용인, 고양보다도 많다. 조만간 성남까지 제치고 경기도 2위까지 올라설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내가 바랐던 평택은 경제만 커지는 도시는 아니었다. 도시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나무를 심고, 공원을 만들고, 녹지를 연결하는 일을 꾸준히 추진했다. 또 깨끗한 하천을 만들고, 시민들이 걸으며 쉬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넓혀 가려 했다. 문화도 마찬가지였다. 평택아트센터를 비롯한 문화 기반 확충은 평택이 산업도시를 넘어 문화도시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때로는 불편을 감내하면서도 도시의 미래를 믿어준 시민들, 수많은 민원과 갈등 속에서도 현장을 지켜온 공직자들, 그리고 평택의 가능성을 함께 키워온 많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택의 오늘은 모두가 함께 만든 결과다.

이제 평택은 작은 도시가 아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기지가 있고 세계가 주목하는 삼성전자가 있으며 반도체와 수소, 미래 자동차, 교육과 국제교류의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다. 평택의 더 큰 발전을 위해서는 행정도, 산업도, 교육도, 문화도 세계를 기준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공직자는 더 많이 공부하고 성장해야 하며 시민사회와 정치권도 평택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산악인 허영호는 산악 등반에서 내려가는 하산길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르는 길보다 더 어렵고 사고가 많은 게 하산길이며, 나머지 절반을 잘 준비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그는 항상 겸손할 수 있었다.

나에게 정치 인생 31년은 충분하다.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은 전혀 없다. 이제 시장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한 시민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어떤 약속을 받았거나 다른 자리를 생각해서가 아니다. 삶의 하산을 조금씩 준비하고, 그동안 충분히 함께하지 못했던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하고 싶었던 공부와 여행도 해보려 한다.

나는 물러나지만, 평택은 멈추지 않는다. 새로운 리더십과 시민의 힘으로 평택은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리라 믿는다. 위대한 평택시대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늘 응원하겠다.

/정장선 평택시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