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광부 등 속수무책 기다렸던 과거 경험

道, 17개 광역지자체 최초 ‘지원 조례’ 마련

초기 통역·행정·법률 안내… 활동가 ‘환영’

“재발방지위 구성 의무화, 실질적 권한 줘야”

지난 3월19일 엄수된 뚜안(23)씨의 발인식 당시 모습. 천주교 신자였던 뚜안씨의 영정을 든 그의 친구가 장례식장 복도를 걷고 있다. 2026.3.19 /경기이주평등연대 제공
지난 3월19일 엄수된 뚜안(23)씨의 발인식 당시 모습. 천주교 신자였던 뚜안씨의 영정을 든 그의 친구가 장례식장 복도를 걷고 있다. 2026.3.19 /경기이주평등연대 제공

“가장 힘든 시기에 가족들이 사회의 관심과 배려를 받고 권리를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줍니다.”(베트남에서 온 뚜씨의 편지 중)

타국에 있는 가족의 부고를 전해들은 유족에게 남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사고 경위를 듣고, 장례와 시신 송환 방식을 정하고, 통역과 법률 정보를 받는 일. 응우옌 반 뚜안(23)씨의 동생 뚜(21)씨가 최근 경인일보에 보내온 편지에서 말한 ‘권리를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은 그런 최소한의 일들이 보장된다는 뜻에 가까웠다.

해외에 있는 이주노동자 유족에게 그 ‘최소한’은 지금껏 제도 밖의 일이었으나 경기도가 처음으로 근거를 마련했다. 도의회는 지난 9일 ‘경기도 산업재해사망 외국인노동자 유가족 지원 조례’를 원안 가결했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처음이다. 뚜안씨 사고를 계기로 유호준(더불어민주당·남양주6) 경기도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조례 제5조에는 해외 유족에게 입국 절차, 국내 체류 숙박·생활, 장례, 시신 본국 송환, 통역·행정 절차, 법률 상담, 심리 상담, 산재 보상 절차를 지원할 수 있는 내용 등이 담겼다.

현장에서 뚜안씨 사건을 지원했던 활동가와 법률가들은 조례 제정을 반겼다. 그동안 유족 지원이 개별 활동가나 단체의 역량에 기대어 이뤄졌다면, 이번 조례는 적어도 지자체가 나서야 할 공적 책임의 범위를 처음으로 명시했다는 평가다. 특히 해외 유족이 한국의 수사·보상 절차를 알지 못한 채 판단해야 했던 현실을 고려하면, 사고 초기부터 통역과 법률 안내가 제공될 수 있다는 점은 가장 큰 변화로 꼽힌다.

뚜안, 스물셋 죽음 뒤의 벽 | 경인일보

뚜안, 스물셋 죽음 뒤의 벽 | 경인일보

불친절은 죄가 아니다. 위임장을 받아주지 않은 것도, 부검 동의를 구할 방법이 없다고 한 것도 절차 위반은 아니다. 법은 무엇을 했는지 묻지만 어떻게 했는지는 묻지 않는다.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이라서 한 번 더 설명해주고, 한 번 더 기다려주고, 한 번 더 물어봐주는 일은 어떤 법에도 의무로 적혀 있지 않다. 그 ‘한 번’을 사람들은 감수성이라 부르지만 ‘몰감수성’은 죄가 되지 않는다. 사고 다음 날 찾아간 경찰서. 사흘 뒤 한국과 베트남에 동시에 차려진 두 개의 빈소. 한 달 뒤 동생이 다시 찾은 사고 현장. 그 세 곳에서 목격한 것은 법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한 가족이 먼 거리 때문에 외롭게 버텨야 했던 석 달의 시간이었다. 누구도 절차를 어기지 않았다는 그 말은 결국, 누구도 더 살피지 않아도 됐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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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들은 통역·행정 절차 지원과 법률 상담 등이 담긴 제5조를 가장 의미 있는 조항으로 꼽았다. 사고 경위와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를 알기도 전에 합의로 내몰리거나 브로커에 위임을 빼앗기는 상황이 반복돼온 만큼, 사고 초기부터 공적 통역과 법률 안내가 제공된다면 유족이 판단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지암 이환춘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는 “제5조 지원사업에 그간 이주인권단체들이 요구한 내용이 대부분 반영됐다. 실질적으로 작용되려면 무엇보다 통역 및 행정절차 지원, 법률 상담 및 권리구제 관련 정보 제공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용덕 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 활동가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재발 방지다. 유족이 현장조사와 재발방지대책 마련의 실질적 주체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고,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위원회 구성을 의무화해 유족에게 실질적 권한을 줘야 한다”고 평가했다.

입국·체류·산재보상 절차 조례로 완성 못해

외국 공관 연락망 함께 움직여야 현장 작동

道 전담 창구·관계기관과 협의체 마련 필요

다만 남은 과제도 있다. 유족의 입국과 체류, 산재 보상 절차는 지자체 조례만으로 완결되기 어렵다. 법무부의 비자·출입국 절차,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보상 체계, 외국 공관과의 연락망이 함께 움직여야 조례의 취지가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도 차원의 전담 창구와 관계기관과의 협의체 마련을 주문하는 이유다.

이 변호사는 “해외 거주 유족이 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쉽지 않다”며 주재국 한국대사관을 통한 안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장은 담당 부서와 전문가 집단, 집행을 점검할 자문기구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짚었다. 장혜진 노무사는 “조례에 근거가 생겨도 해마다 예산 심의 과정에서 사업이 밀리면 지원은 안정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며 예산 확보를 강조했다.

고용노동부의 ‘고용노동백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에서 산재로 숨진 이주노동자는 연평균 109명에 달했다. 이 숫자는 사고 현장에서 멈추지 않는다. 죽음이 발생할 때마다 국경 밖에는 부고를 듣고도 사고 경위와 장례, 시신 송환, 산재 보상 절차를 제대로 알기 어려운 가족들이 남아있다.

한국도 한때 타국에서 일하다 숨진 가족의 소식을 속수무책으로 기다려야 했던 유족을 둔 나라였다. 그 기억은 경제 성장의 서사 뒤로 밀려났고, 지금 이 땅에서 일하다 숨진 이주노동자의 유족이 같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도의 이번 조례는 그 긴 시간 끝에 처음 놓인 디딤돌인 셈이다.

[인터뷰] ‘산재사망 외국인 노동자 유족 지원 조례 대표발의’ 유호준 경기도의원

“사고 이후 방치돼온 유족… 이번 조례는 현실의 응답”

산재·이주 경계 “지방정부, 사각지대 제도적 인정”

뚜안씨 사건 후에도 장소·업종 바뀌었을 뿐 ‘반복’

상위법 논의 이어지려면 ‘신속한 연계’ 보여줘야

유호준 경기도의회 의원이 23일 수원시 경인일보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2026.6.23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유호준 경기도의회 의원이 23일 수원시 경인일보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2026.6.23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이천 자갈공장에서 숨진 베트남 청년노동자 뚜안씨 사건은 국경 밖 유족의 권리를 묻는 계기였다. 이주노동자가 산재로 숨지면 일부 현장에서는 회사가 졸속 합의를 서두르고 수사는 관행대로 흘러가는 일이 반복돼 왔다. 유족에게 정보와 지원을 제공하는 영역은 공적 제도가 아닌, 이주인권 현장 활동가들이 개별 사건마다 발 벗고 나서며 메워온 지 오래였다.

유호준 경기도의원이 ‘외국인 노동자 유족 지원 조례’를 준비한 계기도 여기에 있었다.

최근 경인일보 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유 의원은 뚜안씨 사고에 대해 “반복돼 온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 문제에 방점을 찍은 사건”이라며 기억을 떠올렸다. 지난해 8월 화성 플라스틱 제조공장에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가 숨졌을 때도 안전 대책과 책임 규명 요구가 나왔지만, 해외 유족 지원 문제까지는 논의가 나아가지 못했다.

몇 달 뒤 뚜안씨 사고를 계기로 사망 이후 유족이 한국의 절차로 인해 겪는 어려움이 드러나면서 그의 문제의식은 조례 발의로 이어졌다. 유 의원은 “장소와 업종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그 사이 아무것도 바꿔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경인일보의 뚜안씨 사고 관련 연속 보도도 조례를 준비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 유 의원은 “사고를 단순 사건 보도로 끝내지 않고 의미와 과정, 유가족의 이야기를 계속 다뤄주다 보니 이 사안이 도민들과 동료 의원들에게 잊히지 않을 수 있었다”며 “이번 조례는 사고 그 자체만이 아니라 사고 이후 유족이 방치돼온 현실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일하다 숨진 이주노동자의 유족 문제는 ‘산재’와 ‘이주’의 경계에 놓여 있었다. 사고 조사와 보상은 기존 산재 절차 안에서 다뤄졌지만, 해외 유족이 한국에 들어와 장례와 보상·권리구제 과정을 밟도록 돕는 공적 장치는 뚜렷하지 않았다. 유 의원은 이번 조례의 의미를 “지방정부가 그 사각지대를 제도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했다. 기관별로 흩어져 있던 사망 이후 절차를 조례를 통해 하나의 지원 흐름으로 잇게 된다는 설명이다.

때마침 근로복지공단도 산재 사망 이주노동자 유족 예우사업에 나섰다. 지난 3월 뚜안씨 유골함 운송 당시 공항 내 추모공간 등을 마련했고 이를 정례화하겠다고 밝히면서다. 근로복지공단이 한 축을 맡기 시작한 만큼 역할 분담도 과제로 남았다. 유 의원은 “근로복지공단과 실무협의를 통해 맞춰가면서 경기도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때 해외 일터로 가족을 떠나보냈던 기억이 이제 이 땅에서 숨진 이주노동자의 유족 문제로 돌아왔다. 그렇기에 이번 조례는 한국 사회의 부채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유 의원은 “2015년 네팔을 방문했을 때 한국에 이주노동을 갔다가 다치거나 숨진 노동자의 가족들이 모이는 자조모임을 본 적이 있다”며 “대한민국도 과거 독일에 광부들을 보냈고, 당시에도 남겨진 가족들끼리 모이는 자조모임이 있었다. 그런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 한국 사회가 더는 이주노동자 유족의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도의 이번 조례는 첫 응답인 동시에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현장의 이주인권 활동가들은 조례의 취지가 타 지역과 상위법 입법으로 확산하려면 안정적인 예산과 담당 체계, 공관을 통한 해외 유족 안내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봤다. 산재보상·외국인노동자 보호 체계에서도 유족 지원을 함께 다뤄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유 의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유가족이 실제로 도움을 받았는가’다. 도가 근로복지공단과 함께 먼저 실무모델을 만들고 그 성과를 토대로 전국 표준화를 제안하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례가 다른 지자체로 확산하고 상위법 논의로 이어지려면 유족 입국과 장례·송환, 권리구제 연계가 얼마나 신속하게 이뤄지는지 보여줘야 한다. 현장 지원 사례를 쌓으며 제도 확장의 필요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