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연구자들, 운동역사 밝혀

경인일보 약전 4차례 연재도

박찬대, 전시 관람 “市 나서야”

중년의 임영균 지사 정장 차림. /손자 임상호씨 제공
중년의 임영균 지사 정장 차림. /손자 임상호씨 제공

인천 최초의 치과의사이자 사회활동가·언론인으로 지역사에 이름을 남긴 임영균(1904~1966) 선생의 소년 시절 독립운동 행적이 최근 지역 연구자들의 고증(2월20일자 1·10면 보도)을 통해 뒤늦게 밝혀지면서 독립유공자 추서가 추진되고 있다.

임영균의 손자 임상호씨는 국가보훈부에 임 선생에 대한 서훈을 신청했다고 30일 밝혔다.

1919년 3·1운동 당시 인천에서 일어난 상가 ‘철시(撤市) 투쟁’은 인천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사건으로 꼽힌다. 철시 투쟁은 1919년 3월27일부터 4월 초까지 인천 시내 상가들이 일제에 항의하며 문을 닫은 사건이다. 당시 18세 김삼수와 15세 임갑득이 투쟁을 주도하다 체포됐다. 이 사건은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가 국가 차원으로 1971년 펴낸 ‘독립운동사’(제2권)에 기록되기도 했다.

임갑득이라는 소년은 철시 투쟁 이후 행적이 묘연했다. 지난 2월 아벨서점 곽현숙 대표, 이원규 소설가, 기독교 역사 연구자 이성진씨가 임영균 선생의 제적등본과 영화학교 학적부 등을 조사한 끝에 임갑득과 인천 지역사(史)의 주요 인물인 임영균이 동일 인물임을 밝혀냈다.

임상호씨는 “지역 연구자들이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사실을 찾아준 것이 서훈 신청의 계기가 됐다”며 “보훈부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평전 작가로도 널리 알려진 이원규 소설가는 임갑득과 임영균에 대한 각종 자료와 증언을 추가로 발굴해 지난 4일부터 25일까지 4차례에 걸쳐 경인일보에 ‘임영균 약전’을 연재했다. 잊힌 독립운동가를 106년 만에 호명한 ‘임영균 약전’은 지역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벨서점 곽현숙 대표는 “(임영균 선생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밝혀졌으니, 사실 그대로 (서훈 여부가) 판단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있는 아벨서점 전시관에서는 ‘임갑득과 임영균’에 대한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박찬대 인천시장 당선자는 지난달 4일 아벨서점을 찾아 전시를 관람하기도 했다. 당시 박 당선자는 “임갑득 소년 독립운동가에 대한 사료를 시민들이 찾아냈는데, 시민 개인의 역할도 훌륭하지만 이것을 제도적으로 인천시가 나서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독립운동의 역사를 귀하게 생각하는 인천이 우리의 미래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민선 9기 인천시장직 인수위원회가 30일 박 당선자에게 전달한 ‘시정 운영 권고안’ 속 100대 시정 과제에는 ‘기초예술 및 역사·문화 생태계 구축’이 포함돼 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