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월드컵 포트2 배정, 역대급 조편성, 황금세대 라인업이라는 희망 속에서 시작했던 2026 FIFA(국제축구연맹) 북중미 월드컵은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허망하게 막을 내렸다.
지난 9일 멕시코 과달라하라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현지의 분위기는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광장을 누비면서 ‘꼬레아(한국)’를 외치는 멕시코인들을 만나고, 한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거의 모든 관중이 한국을 응원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이 보였다. 게다가 2-1 역전승이라니. 내친김에 조 1위를 바라본 순간 만큼은 모두가 행복했다.
붉은악마를 비롯한 한국 팬들은 월드컵만을 바라보며 적금을 들고 카드 할부 결제를 하면서까지 멕시코에 왔다. 한국 뿐만 아니라 가까운 미국, 캐나다부터 전 세계의 한국 교민들이 모여들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응원단은 한데 모여 태극기를 흔들었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하지만 그 기대는 세 경기 만에 끝났다. 월드컵이 끝난 것은 대표팀만이 아니었다. 이번 대회를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팬들의 꿈도 멕시코에서 멈췄다.
과달라하라를 시작으로 몬테레이까지 따라왔던 응원단은 32강 결전지였던 미국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 대신 돌아가는 항공권을 다시 확인해야 했다.
남아공전이 끝나고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한국 축구의 현실이었다. 같은 북중미에서 바라본 일본은 우승후보 네덜란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죽음의 조에서도 살아남았다. 1990년대부터 ‘100년 계획’을 내걸고 장기 비전과 시스템 속에서 차근차근 미래를 다진 결과다.
반면 한국 축구는 늘 ‘이번 월드컵’만 바라봤다. 감독이 바뀔 때마다 철학도 바뀌었고, 대회가 끝날 때마다 책임론과 인적 쇄신만 반복됐다. 이번 월드컵에서 역대급 참사를 빚은 홍명보 감독도 물러났고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도 사퇴 의사를 밝혔다.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만난 한 축구 팬은 “다음 월드컵엔 응원을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반복되는 실망 속에서 한국 축구를 향한 믿음이 무너진 말로 들렸다.
한국 축구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대대적인 변화를 앞두고 있다. 감독과 협회장을 바꾸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바꾸는 개혁이 필요하다. 이제는 축구 팬들의 신뢰를 되찾아야 할 시간이다.
/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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