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굣길 뛰어들어와 소설쓰는 딸

아리송한 줄거리… 참견은 금물

내 첫 작품은 교실에서 써내려가

유치짬뽕 할리퀸에 몰린 친구들

김서령 소설가
김서령 소설가

열두 살 딸은 요즘 매일 하굣길에 뛰어 들어온다. 이 더운 날 그냥 사부작사부작 그늘 따라 걸어올 일이지 어쩌자고 땀을 빨빨 흘리며 저러는지.

양말 벗어던지고 손을 씻자마자 아이가 앉는 곳은 식탁 앞이다. 책가방에서 딱 손바닥만 한 수첩을 꺼낸 뒤 노트북을 연다. 수첩에는 쉬는 시간마다 써둔 메모가 있고, 수첩을 넘겨 보며 노트북에 부랴부랴 쓰기 시작한 것은 그래, 소설이다.

아이가 없는 동안 슬그머니 읽어보았는데, 줄거리는 도통 아리송하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타임슬립인가 싶더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이한 소년이 등장하고, 판타지인가 싶었는데 추리물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참견은 금물이다. 열두 살은 사춘기인 듯 아닌 듯한 나이이기 때문에 잘못 건드렸다가는 노트북 뚜껑 쾅 닫고, 제 방문도 쾅 닫고 들어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요거트에 얼린 산딸기를 몇 알 떨어뜨리고 꿀만 잔뜩 얹어 내밀뿐이다. 머리가 안 돌아갈 땐 단 게 최고니까 꿀을 아껴선 안 된다.

아이가 소설을 쓰겠다고 나선 건 다 백은별 작가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첫 소설을 출간하고 열여덟 살인 지금 스타작가로 자리잡은 백은별 작가는 딸의 롤모델이다. “엄마는 몇 살 때 처음 소설을 썼어?” 아이가 묻는다.

내 첫 소설은 교실에서 시작되었다. 줄노트에 빽빽하게 써내려간 내 소설을 먼저 보기 위해 쉬는 시간이면 와글와글 친구들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청카바를 입고 스프레이를 뿌려 앞머리를 바짝 세웠던 친구는 늘 딸기우유를 내밀었다. “내가 제일 먼저야.” 보름달 빵을 내미는 친구도 있었고, 왜 다음 편을 빨리 쓰지 않냐며 짜증을 내는 친구도 있었다.

학교 앞 서점에서는 얼마든지 할리퀸 로맨스 소설을 빌려볼 수 있었는데, 그 애들은 왜 나를 그렇게 졸랐을까. 그래봐야 할리퀸 발끝도 따라가지 못할 유치짬뽕 같은 소설이었을 텐데.

나는 눈 빠지게 소설을 기다리는 친구들을 위해 할리퀸 로맨스 소설을 더 열심히 읽었다. ‘판결은 침대에서’라는 요상한 제목의 소설을 빌렸던 날에는 엄마에게 들켜 하마터면 빗자루로 맞을 뻔했다. 지금 와 그 소설의 줄거리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었기에 제목이 그 모양이었을까.

학교 앞 서점에는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도 있었고,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있었다. 나는 그 책들과 더불어 ‘어른들은 몰라요’, ‘남부군’도 읽었다. 밤이 되면 ‘그리운 바다 성산포’ 낭송 테이프를 닳도록 들었다. 그러다 졸리면 할리퀸을 읽고, 잠이 깨면 할리퀸을 흉내낸 소설을 썼다. 그런 열다섯 살을 보냈다.

그러니 내 딸의 열두 살은 나에게 지극히 흥미롭다. 이 아이는 어떤 생각으로 소설을 쓰는 것일까.

돌이켜 보면 나도 왜 그렇게 써댔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도 재밌으니 그랬겠지. 볼펜 아래에서 아지랑이처럼 이야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겠지.

물론 내 어린 날과는 달라서, 딸에게는 딸기우유 사주며 빨리 보여달라 조르는 친구가 없다는 게 몹시 안타깝다. 유일한 독자는 기꺼이 내가 되어야 한다.

소설을 쓰면서 딸은 멍 때리는 시간이 늘었고, 그건 나에게도 다행한 일이다. 내 소설을 쓰기 위해 멍 때릴 때마다 투덜대던 아이가 이제 똑같이 굴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을 벌었다.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어?”

아이의 질문에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냥 사람을 좋아하면 돼. 다 사람들 좋으라고, 사람들 행복하라고 소설 쓰는 거니까.”

이해하지 못한 걸 들키지 않으려고, 아이는 퍽 오만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거야 나도 알고.”

안다면 다행이다, 정말로.

/김서령 소설가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