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벌거벗고 씻되 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경건한 의식·깨끗한 몸위한 방편

양성 지위가 대등했다 볼수 있어

집 안 샘물 받아 더위 날리기도

강화읍 대로변에 뚜렷하게 드러난 대중목욕탕 굴뚝. 지금은 문을 닫아 빈 건물이 되었다. 머릿돌을 보면 이 목욕탕 건물이 1985년 4월에 준공한 것으로 돼 있다. 2026.7.1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강화읍 대로변에 뚜렷하게 드러난 대중목욕탕 굴뚝. 지금은 문을 닫아 빈 건물이 되었다. 머릿돌을 보면 이 목욕탕 건물이 1985년 4월에 준공한 것으로 돼 있다. 2026.7.1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올 여름 더위가 가히 역대급 폭염으로 기록될 듯하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벌써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으며 시민들이 분수 물줄기에 더위를 식히는 장면이 주요 사진 뉴스로 올라올 정도다. 폭염을 피해 세찬 분수 물줄기에 몸을 맡긴 그 어둑한 사진을 보노라면, 샤워(shower)의 어원이 쏟아지는 소나기에 몸을 씻는 데서 유래했겠구나 싶다. 더위를 식히는 데는 시원한 물속에 몸을 담그는 게 최상이다.

사람들은 몸을 씻기 위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목욕이란 것을 해 왔다. 고려시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목욕(沐浴)은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 일을 말한다. ‘목(沐)’이란 한자어가 물 담긴 나무통으로 따르는 물로 머리를 감는 데서 왔다. ‘욕(浴)’은 계곡물에 첨벙거리며 목욕하는 것을 일컫는다. 고려시대 목욕은 경건한 의식의 하나이기도 했으며,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으며, 여름철 더위를 식히기 위한 피서 행위이기도 했다.

고려시대 목욕 문화를 보여주는 당시 작성된 보고서 중에는 우리가 참으로 의아해할 만한 내용이 있다. 남녀가 벌거벗고(혹은 속옷만 입은 채로) 시냇물에 앉아 아무렇지도 않게 목욕을 즐겼다고 하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도 여름에는 두 번씩이나 그랬다고 한다.

1123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이 쓴 ‘고려도경’에 당시 고려의 목욕 문화를 엿보게 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옛 사서(史書)에 고려의 풍속은 사람들이 모두 깨끗하다고 하더니, 지금도 그러하다. 그들은 항상 중국인이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을 하고 문을 나서며, 여름에는 날마다 두 번씩 목욕을 하는데 시냇물에 많이 모여 남녀 구별 없이 모두 의관을 언덕에 놓고 물구비 따라 몸을 벌거벗되, 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서긍이 보기에, 고려 사람들은 예로부터 깨끗한 걸 좋아했다고 하는데, 자신이 눈으로 확인한 바로도 여전히 그러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외출하기 전에는 언제나 몸을 씻었고, 여름철에는 길 가던 사람들이라도 남녀를 따지지 않고 의관을 벗어 놓고 흐르는 물에 몸을 담갔다. 서긍이 말한 대로, 고려 사람들은 남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완전한 알몸으로 목욕을 했을까. 서긍은 이를 ‘설로(褻露)’라 표현했는데, 어느 곳에서는 ‘벌거벗되’로 번역하고, 어느 곳에서는 ‘속옷을 드러내고’로 해석하고 있다. 속옷만 입은 채로 시냇물에 들어가 남녀가 함께 목욕을 했다고 치더라도 사회 통념상 무척 대범한 일임에 틀림 없다. 고려에서는 그만큼 여성과 남성의 지위가 대등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서긍은 또 고려 사람들이 중국 송나라 사람들보다도 훨씬 목욕을 즐겼음을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

또 서긍이 언급한 ‘옛 사서’는 ‘위서(魏書)’를 말한다. 이 ‘위서’ 중 ‘고구려편’에는 ‘귀천(貴賤)의 구분 없이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는 내용이 있다.

강도(江都) 시기 강화에서는, 흐르는 계곡물이 아니어도 각각의 집 안에 샘물을 받아 놓고 몸을 담그고 더위를 날릴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는 했던 모양이다. 이규보는 그 일을 시로 남기기도 했다. 1236년 이규보가 집 뒤 바위 틈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바위를 깨낸 뒤 샘을 마련했다. 샘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는 작은 연못을 파고서 흐르는 샘물을 받아 놓았다. 여름철 멱을 감기 위함이었다. 이규보는 이 연못이 있으니 목욕물을 길어 나르는 고역도 덜 수 있다고 고마워 했다.

우리는 흔히 ‘목욕재계(沐浴齋戒)’라는 표현을 하는데, 뭔가 중요한 일을 할 때 부정 타지 않도록 몸을 깨끗이 하고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고려시대 역시, 외교문서를 작성한다든지 할 때는 늘 목욕재계한 뒤 글을 썼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