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못한 그 날의 기억… 여전히 그 곳에 남아 있다

 

인현동 화재 참사 기억 소환

연대의 마음 섞여 묘한 울림

유가족·생존자 공연장 찾아

“함께 기억해 주셔서 감사”

암전이 된 무대에 액자만 불을 밝히고 있다. 액자 속에는 누군가의 사진 대신 하얀 별이 박혀있고, 별은 빛을 내며 반짝였다. 1990년대 유명했던 애니메이션 ‘달의 요정 세일러문’의 주제가가 흐른다.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지금이 순간이 꿈이라면~”하는 노래 가사와 함께 조명이 켜지며 무대 전체가 드러난다.

극 중 시간은 2026년 10월 30일이다. ‘서은’과 ‘서이’라는 이름의 쥐 두 마리가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먼지 쌓인 가게를 청소하느라 야단법석이다. 곧 아픈 상처를 가진 아이들의 파티가 열릴 예정이다. 부장판사가 된 이란성 쌍둥이 남매 누나인 ‘정우’를 시작으로, 두 아이를 서울대에 보낸 슈퍼우먼 전업주부 ‘지은’, 회계사가 된 ‘정필’, 횟집 사장님 ‘호철’, 상장을 앞둔 기업의 여성 CEO가 된 ‘민주’, 그리고 옛 아픔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채 장애를 안고 힘겹게 살아가는 ‘근식’도 모습을 드러낸다. 어른이 된 아이들은 환하게 웃고 춤추며 왁자지껄 수다를 떨지만, ‘그날’을 이야기하는 것만큼은 조심스럽다.

어른이 된 아이들은 그날을 잊으려 애를 썼지만 결코 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무대에서 아이들은 “우리가 그날 왜 거길 갔지”, “들어가선 안 될 곳의 문을 열어놓은 사람이 잘못인지, 아니면 들어간 사람이 잘못이냐”, “그게 죽을 만큼 잘못한 일인가”라며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1999년 인천의 가장 깊은 아픔인 ‘인현동 화재 참사’를 다룬 극단 십년후의 작품 ‘우리는 떠나지 않았다…메몰리57’의 지난 3일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대공연장 현장의 모습이었다. 오는 8일 부산에서의 대한민국연극제 출전을 앞두고 마지막 공연이었다.

1시간 30분의 러닝타임 동안 유쾌한 파티가 내내 이어졌으면 좋았겠지만, 중반부를 넘어서자 객석에서는 더 이상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즐거운 파티를 벌이다가도 ‘그날’의 기억이 엄습할 때면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고 몸서리를 치며 무대를 뒹굴었다. 객석 곳곳에서는 참았던 흐느낌이 터져 나왔고,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날 출정식을 겸한 마지막 공연은 인천 연극을 대표해 출전하는 극단을 향한 응원과, 과거의 참사가 더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연대의 마음이 뒤섞여 묘한 울림을 자아냈다.

인현동 화재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도 공연장을 찾아 작품을 함께 관람했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도 유족 곁에서 공연장 자리를 지켰다. 도 교육감은 “1999년 참사 당시 전교조 전임자로 상근하며 받았던 큰 충격이 생생하다”며 “배우들이 재연하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옛 생각이 많이 나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재원 인천인현동화재참사 유족회 회장은 극중 호철의 모습을 보며 하늘에 있을 아들을 떠올렸다. 그는 “낚시를 갈 때마다 친구들과 회를 먹고 싶다며 많이 잡아오라고 부탁했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면서 “이번 작품을 더 많은 이들과 감상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 참사 생존자는 “작품으로 무대에 올려준 연극인들에게 응원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극단 십년후 ‘메몰리57’이 상연된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대공연장 무대. 2026.7.3 /김성호기자 ksh9@kyeongin.com
극단 십년후 ‘메몰리57’이 상연된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대공연장 무대. 2026.7.3 /김성호기자 ksh9@kyeongin.com

극단 십년후 송용일 대표는 “부채감으로 작품을 준비했다. 비극을 다시 기억하게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연극의 역할”이라고 했고, 극작과 연출을 맡은 김윤주 연출가는 “매번 무대를 올릴 때마다 이 공연장에 아이들이 같이 와서 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며 “함께 와서 그들을 기억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무대 인사를 마친 극단 관계자와 유가족, 관객들은 객석을 떠나 회관 인근에 마련된 인현동 화재 참사 추모비로 발걸음을 옮겨 묵념을 하는 추모식을 가졌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