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초중고 출신 지휘자 양유라

독일 주립극장 총음악감독 선임

음악계 성차별 여전히 상존해도

불평등 불평 않고 용기·연대 증명

송하백 칼럼니스트
송하백 칼럼니스트

올해 상반기에도 세계 곳곳에서 한국인 음악가들의 낭보가 날아들었다. 첼리스트 김태연(20)이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거머쥔 데 이어 피아니스트 임윤찬(22)이 독일의 권위 있는 음악상 ‘오푸스 클래식’에서 ‘올해의 기악 연주자 부문’을 수상했고,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지(30)는 ‘미국 빅 7’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제1바이올린 종신 단원으로 정식 임명됐다.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는 이들의 성과는 한국이 점차 ‘콩쿠르 강국’에서 ‘클래식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최근 특히 화제가 되었던 것은 지휘자 양유라(36)의 소식이다. 다름이 아니라 한국 클래식계 최약 분야로 꼽히는 지휘계에 드문 희소식이어서다. 지난달 23일, 독일 자를란트 주립극장은 공식 성명을 통해 한국인 지휘자 양유라를 총음악감독으로 선임한다고 밝혔다. 이로서 양유라는 독일 자를란트주를 대표하는 이 극장의 129년 역사상 첫 여성 총음악감독이자 독일 오페라극장 전체를 통틀어 최초의 한국인 총음악감독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썼다. 더 놀라운 점은 그가 국내에서 일반 초·중·고등학교를 재학했다는 사실이다. 고교 재학 중 지휘자의 꿈을 가지게 되었지만, 한국에서 소위 ‘엘리트코스’를 밟지 않고 포디움에 입성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국내 음악대학 입학에 실패한 양유라는 독일로 떠났다. 2009년 데트몰트 국립음대에 입학했고 겔젠키르헨 음악극장의 음악코치(코레페티토어)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킬, 아헨, 카를스루에 등의 오페라극장에서 피아니스트와 연습 지휘자 등의 단계를 차근차근 거치며 실력을 쌓았다. 이윽고 34살이 되던 해, 2024년에는 330년 역사의 독일 라이프치히 오페라극장 첫 여성 수석지휘자(카펠마이스터) 자리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라이프치히 오페라극장은 구스타프 말러, 리카르도 샤이 등의 명지휘자가 음악감독으로 활동한 독일의 유서 깊은 극장이다.

양유라가 국내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소감을 보면 이 젊은 마에스트라가 어떻게 이와 같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이 보인다. 그의 답변은 그보다 앞서 세계에서 음악감독, 상임지휘자 등을 역임한 여성 지휘자들이 공통으로 강조해 온 바와 맥을 같이 했다. “앞서 길을 닦아준 선배 여성 지휘자들에게 감사하며, 음악계 내 성평등이 완벽하지 않기에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더 책임감을 갖고 임하려 했다.(한국경제)”

지휘대는 오랜 시간 ‘금녀의 공간’이었다. 지금은 여성의 교육과 사회 활동이 당연한 시대이지만 과거에는 글을 배우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것처럼, 클래식 음악의 오랜 역사에 비해 여성에게 주어진 지휘 교육의 기회와 무대 진출의 역사는 매우 짧다. 여성을 리더가 아니라 서포터로 바라보는 성차별적 인식 또한 잠재력과 실력이 있는 여성 지휘자의 포디엄 진출을 막았다.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해럴드 숀버그가 여성 지휘자의 지휘에 대해 ‘속치마’ 운운한 사건은 음악계에 만연한 성차별적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구자는 언제나 존재한다. 1887년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며 포디움에 오른 최초의 여성이 된 메리 웜과 성차별이 만연하던 1930년대에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한 안토니아 브리코가 각각의 시대에 이정표를 세웠다면, 2007년 볼티모어 심포니의 상임지휘자로 임명된 마린 알솝은 여성 지휘자 역시 메이저 악단의 음악감독으로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며 본격적인 포디움 진출의 길을 열었다. 양유라를 비롯해 김은선, 엘림 찬, 요아나 말비츠 등 동시대에 다시금 최초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젊은 마에스트라들은 그 길을 넓히고 있다.

음악계에 성차별은 여전히 상존한다. 그러나 현실을 바꿔나가는 마에스트라들은 그중 누구도 불평등을 불평하지 않았고, 누구도 지휘봉을 내려놓지 않았다. 차별을 이기는 것은 그보다 강한 용기와 연대다. 앞선 여성 지휘자들의 활약에 힘입어 그 바통을 이어받을 새로운 마에스트라가 계속해서 등장하기를 고대하고 기대해 본다.

/송하백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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