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존엄성 짓밟거나 혐오 표현
선진국도 처벌… 美, 사회적 매장
국보법 찬양 고무 조항 손질해서
진정한 언론자유 한발 다가서길
최근 표현의 자유가 공론장에 떠올랐다. 고교 야구장에서 나온 혐오와 차별적 내용의 구호가 발단이 됐다. 협회가 물의를 일으킨 고교에 출전정지 징계를 내리자 현 정부 고위급 인사가 표현의 자유를 거론한 거다. 이에 비판 여론이 들끓고 청와대까지 나서서 “부적절하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당사자는 “서울 한복판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쳐도 허용돼야 한다”고 했다. 논점을 뒤섞어 흐려버리는 일종의 동문북답(東問北答)이겠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절대적 기본권이라는 데 이론이 없다.
하지만 타인의 존엄성을 짓밟거나 사회적 합의를 위협하는 수준의 혐오 표현은 선진국도 법과 규제의 대상으로 한다. 표현의 무제한적 자유는 용인되지 않는다. 유럽인권재판소도 “혐오 표현은 유럽인권조약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제10조) 보호 범위를 벗어난다”고 판결한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법으로 엄격히 처벌한다. 파시즘의 언어 폭력이 인류적 재앙(홀로코스트)으로 이어졌던 경험 때문이겠다. 미국은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를 신성시해 국가가 처벌하지는 않는다. 대신 사회적 매장과 기업의 해고 등 강력한 자율 규제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스포츠의 경우 몰수패와 벌금 및 출전정지 처분을 내린다.
그런 점에서 이번 표현의 자유 논란은 노이즈(잡음)에 가깝다. 그래도 주목할 대목이 있다. 바로 “김일성 만세” 부분이다. 현행법으로는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 고무 등) 위반으로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아마도 천생 언론인 이부영은 전혀 다른 시각에서 하고픈 말이 많을 것이다.
그는 국가보안법과 질긴 악연이 있다. 첫번째는 박정희 정권 때이다. 동아일보 기자이던 1974년 동료들과 자유언론실천선언문을 발표한다. 정권은 곧바로 그를 긴급조치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한다. 대법원은 1976년 8월 징역 2년6월을 선고한다.
두번째는 전두환 정권 때이다. 그는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투신한다. 민통련 사무처장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규명과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며 집회와 시위를 주도한다. 그 결과 국가보안법과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된다.
세번째는 노태우 정권 때이다.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상임공동의장으로 활동하면서 통일운동 일환으로 북한 측과 범민족대회를 추진한다. 그는 또다시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 혐의로 구속된다.
이때 넘겨진 국보법 위반 재판은 김영삼 정권 들어서야 정리된다. 대법원은 1995년 11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 그 바람에 14대 국회의원직을 잃고 ‘재야 인사’로 복귀한다. 물론 곧바로 사면복권되지만.
진짜 곡절은 2004년 빚어진다. 언론인 이부영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대목이다. 그는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으로서 개혁입법의 하나로 국가보안법 개정을 추진한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회동을 갖고 국가보안법 독소조항을 삭제하기로 타협한다. 바로 제7조 ‘찬양 고무 선전 또는 이에 동조’ 관련 내용이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강경파 의원들은 국보법 개정이 아니라 완전 폐지를 주장했다.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로 몰아가는 분위기에 여야가 합의한 타협안은 결국 폐기된다.
세상만사 때를 놓치면 그르치는 법인가.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났지만 국보법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차제에 국보법을 손질해 폭넓은 표현의 자유, 진정한 언론자유에 한발짝 다가서는 것이 어떨까. 더불어 잃어버린 우리말 표현도 되찾았으면 좋겠다. 남북이 체제경쟁에 몰두하던 시절, 사실 국력에서 밀리던 시절 스스로 금지한 ‘인민’과 ‘동무’라는 표현 말이다.
링컨 대통령이 말한 민주주의 주체는 인민(People)이지 국민(Nation)이 아니다. 국민학교라는 명칭도 식민 잔재라는 지적에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게다가 언제까지 순우리말 동무를 한자말 친구라고 해야 하나. 국보법도 인민과 동무라는 표현도 모두 자신감 문제이겠다. 지금 우리의 국제적 실질적 위상은 비교불가 아닌가. 이제는 ‘자신감 뿜뿜’ 해도 되지 않나.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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