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은 끝내 조카를 지우지 못했다… 그 산이 어린왕을 품었기에
숨거둔 날,전국 지방사람들 동시에 산신으로 변한 꿈꿔
추익한·어평재 등 여러 설화… 이후 주민들은 제사 올려
비극적 운명을 위로하려는 민중 염원으로 세워진 ‘비각’
월정사 탄허스님 현판도 볼거리… ‘역사적 의미’ 재조명
관객수 1천600만명을 기록하며 인기몰이를 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 단종의 비극적인 삶을 소재로 많은 사람들에게 ‘단종앓이’를 일으켰다. 지난 2월 영화 개봉 이후 3개월여만인 지난 5월 17일 기준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에는 29만여명, 단종의 무덤인 장릉에 22만여명 등 많은 방문객이 다녀갔다. 민간 전설에는 단종이 태백산의 산신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전설이 태백에는 어평이라는 지명과 단종비각으로 남아있다. 태백에 남아있는 단종의 흔적을 되짚어 본다.
■ 태백산신이 된 단종
태백시와 태백문화원에서 펴낸 ‘태백시지명지(김강산 著)’, 단종비각 표지판 안내패널 등에 따르면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은 왕위에 오른지 3년만인 1455년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됐다.
이듬해 성삼문 등이 복위를 꾀했지만 사육신은 죽음을 당했고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돼 영월땅으로 유배됐다. 1457년 금성대군이 순흥 땅에서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되자 단종도 그해 10월 24일 사약을 받고 17세의 어린 나이에 일생을 마쳤다.
단종의 죽음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민간 전승으로 확장됐다. 태백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는 단종이 태백산 산신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단종이 숨을 거둔 날 삼척, 영월, 경북 봉화 지방의 사람들이 동시에 단종이 태백산신령이 된 꿈을 꾸었다는 설화에는 억울하게 죽은 어린 왕의 비극적인 운명을 위로하려는 민중의 염원이 담겨 있다.
또 다른 전설도 있다. 전 한성부윤 추익한은 단종이 영월에 유배된 후 태백산의 머루·다래를 따 자주 진상했다. 어느 날 추익한은 과일을 진상하기 위해 영월로 가던 도중 탄부곡(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연하리 계사폭포)에서 곤룡포와 익선관으로 정장을 한 채 백마를 타고 오는 단종을 만났다. 추익한이 “어디로 가시나이까”하고 묻자 단종은 “태백산으로 가느니라”하고 백마를 타고 사라졌다고 한다.
영월 보덕사 산신각, 영모전 등에는 백마를 탄 단종의 영정이 있는데 단종 옆에 머루바구니를 들고 있는 추익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전승 속에서 주민들은 단종을 산신으로 모시고 음력 9월3일 제사를 올려왔다.
■ “여기부터는 내 땅(御坪)이다”
영월 상동에서 태백으로 넘어오는 길목에는 어평마을과 어평재가 있다. 어평마을은 마을 한가운데 흐르는 하천을 경계로 동쪽은 태백 어평, 서쪽은 영월 어평으로 나뉜다. 태백산으로 가던 단종의 혼령이 이곳에 다다라 “여기서 부터는 내 땅이다”라고 해 ‘어평’이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단종의 혼령이 쉬었다고 하는 태백 어평에는 단종대왕당이라는 성황당이 있어 매년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현재 단종대왕당은 어평마을 안 철학관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당우(堂宇) 내부에는 ‘단종대왕지신위’라고 쓴 위패가 안치돼 있었다.
■ 탄허스님과 단종비각
태백산 망경사에서 천제단 방향으로 올라가는 계단 왼편에는 ‘태백산 단종비각’이 세워져 있다. 현재의 단종비각은 1955년 망경사 박묵암 스님 등이 힘을 모아 건립했다. 한국전쟁 직후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단종을 추모하기 위해 뜻을 모은 결과다. 건물은 목조 삼간 겹집의 팔작지붕 형식으로 지어졌다. 태백산신이지만 비각의 위치가 태백산 꼭대기가 아닌 것은 태백산 꼭대기에는 천신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이 있기 때문에 그 아래에 두기 위함이라고 한다.
당시 월정사 조실이던 탄허 스님이 ‘端宗碑閣(단종비각)’이라는 현판 글씨를 쓰고 비각 내부 비석의 비문을 지었다. 탄허 스님은 20세기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이자 학승으로 난해한 한문 경전을 우리말로 풀이해 강설하며 불교 대중화에 힘쓴 인물이다. 비각 내부에는 ‘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조선국태백산단종대왕지비)라고 쓴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석 뒤편에는 ‘太白山端宗大王碑銘 幷序’(태백산단종대왕비명 병서)라는 제목으로 탄허 스님의 비문이 적혀있다. 단종을 태백산의 도산신으로 모시며 그 위력을 찬양하고 비문을 세우게 된 이력 등을 먼저 서술하고 명문을 기록했는데 명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無中忽有(없다가도 있고)
有而忽無(있다가도 사라져)
往來蕭然(오감에 자취 없으니)
神變難思(신비한 변화 헤아릴 길 없어라)
小大大小(작으면서 크고 크면서 작음은)
靈之威力(모두 신령의 위력이라)
東呑北幷(동북으로 드넓어질 우리 강토여)
非朝卽夕(아침 아니면 곧 저녁에 이뤄지리)
영화 왕사남 열풍으로 단종비각은 태백산 천제단에 오르기 전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쉬어가던 공간에서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장소로 재조명 받고 있다.
/강원일보=전명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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