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남겨진 사람들-독일 대홍수 (1) 여전히 피해현장을 지키는 사람들
올해 1월 경인일보는 ‘기후재난, 남겨진 사람들’ 시리즈를 통해 폭우·폭설 등 갑자기 찾아온 기후재난이후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하는 2차 피해의 현실을 추적했다. 영하를 맴도는 추운 겨울에 만난 가평의 이순호씨 부부는 여름 폭우로 집이 사라진 후 지자체가 지원하는 모텔에서 겨우 잠만 자며 집터 인근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했다. 보도 이후 7개월여가 지난 지금, 이들은 어떻게 지낼까. 상황은 나아진 게 없었다. 모텔 지원도 3월로 종료되며 이들 부부는 임시로 만든 비닐하우스에서 모든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살 집을 다시 짓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정보를 알지 못해 허가 받는 데만 1년이 걸렸다.
그러는 사이 여름이 다시 왔다. 강한 비를 동반한 장마가 곧 시작될 것이라는 기상청의 경고가 마음을 서늘케 한다. 지난 1년, 몸도 마음도 돌보지 못했다. 그날의 악몽이 재현될까 부부는 두렵기만 하다.
사회로부터 방치된 기후재난 피해자의 일상회복은 요원한 것인가. 이 의문을 품고 100년만의 대홍수가 발생했던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아르바일러군을 찾았다.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이재민을 기후재난 피해자로 인식하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일상 회복과 재건을 취재했다. 무엇보다 재난 이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는 독일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이 전하는 기후위기시대의 재난과 피해자, 회복은 우리의 기후재난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 편집자주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2021년 기록적 폭우
최소 135명 사망… 재건 프로젝트 5년째
지방정부·대학·연구소 등 참여한 ‘KAHR’
기후위기 대비한 재건 방법 개발에 집중
지난 5월 11일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아르바일러군을 방문했다. 독일에서도 구불구불한 계곡과 산길이 이어지는 산간지대로 꼽힌다. 곳곳에 포도과수원이 눈에 띄고 와인농장이 즐비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기도 했다. 지금은 평온해보이는 이 곳은 지난 2021년 지역을 관통하는 아르계곡을 중심으로 폭우가 쏟아지며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라인란트팔츠주 집계로 최소 135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 후로 5년이 흘렀다. 이날 아르바일러군에는 뜻깊은 기자회견이 열렸다. 아르바일러군과 아헨공과대학, 슈투트가르트대학 등 이공계 대학 연구진들이 함께 진행중인 ‘KAHR’ 프로젝트의 중간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대홍수 이후 독일 연방정부와 라인란트팔츠주정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정부가 예산을 지원하고 아르바일러군 등 피해지역의 행정당국과 독일 유수의 이공계 대학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대 피해를 회복하고 지역을 재건하는 프로젝트다. 이들은 홍수 발생 직후인 2021년부터 5년여에 걸쳐 피해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KAHR’에는 다양한 대학과 연구소들이 참여하고 있다. 아헨 공과대학 수리공학 및 수자원 관리 연구소(IWW)와 슈투트가르트 대학 공간 및 지역계획 연구소(IREUS)를 비롯해 13곳의 기관이다. 이들은 정부·지자체와 함께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KAHR 프로젝트 1을 실시했고 오는 2029년 3월까지 기후위기 예방에 초점을 맞춘 KAHR 프로젝트2를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KAHR 1은 대홍수 직후의 도시 회복, 복구, 재건을 목표로 대홍수의 원인을 분석하고 큰 피해를 유발한 도시 인프라를 조사하고 연구했으며 기후위기를 대비한 재건의 방법을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과학계 연구 토대로 새로운 방재기준 적용
예전 모습 ‘회복’ 아닌 ‘더 나은 재건’ 목표
“분노한 시민과 급한 정치인, 처음엔 의문”
연구 결과 즉각적 현장 반영, 법적 변화도
기자회견에 참석한 코르네리아 바이가너(cornelia weigand) 아르바일러군 담당자는 “우리 지역은 2021년부터 지금까지 KAHR 프로젝트의 실무 파트너로 함께 해왔다”며 “이 프로젝트에서 대학 및 과학계, 행정당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문제들을 함께 논의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답을 개발해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현재 독일은 KAHR 프로젝트를 통해 피해지역의 재건이 이루어지고 있다. 과학계의 연구를 토대로 새롭게 제시한 방재기준을 근거삼아 무너진 교량을 새롭게 건설하고, 장애인 학교 등 취수취약시설을 보다 안전한 지대로 옮기는 식의 공간 재구조화 등이 진행됐다.
처음부터 이 과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당시를 회상하며 요른 비르크만 슈투트가르트대학 교수는 “모든 것을 잃고 분노한 시민들, 당장 해결이 급한 정치인들이 과연 과학이 무엇을 할 수 있냐며 의문에 가득차 있었다”며 “이 프로젝트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타 프로젝트와 달리, 과학적 연구결과를 즉각 현장에 반영하고 있는데, 현재 소방서나 학교 건립, 대다수 교량 건설 등 재건사업에 적용하고 있고 건축법, 인프라보호법 등 기후재난에 대비한 법적인 변화도 이끌어냈다”고 설명했다.
“믿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일 해냈지만… 그럼에도 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아 낡은 지식만으론 반쪽만 해결하는 격”
이날 기자회견 장소 역시 피해 현장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대홍수가 일어났던 아르계곡이 마을을 가로질렀고 계곡 양 옆으로 여전히 일상을 보내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홍수 이후 완전히 파괴됐었던 기찻길은 다시 건설됐지만 그 옆엔 복구공사가 한창인 시설들도 꽤 있었다. 또 새로 짓거나 보수가 완료된 집들 사이사이, 홍수 피해를 입은 그대로 방치된 집들도 눈에 띄었다. 여전히 재건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홀거 쉬트룸프(Holger schuttrumpf) 아헨공과대학교수는 대홍수 이후 5년여간 이어온 KAHR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를 강조했다. 그는 “(기자회견 현장은) 지난 5년간 민간과 공공 모두에서 이미 수많은 재건이 이뤄졌고 믿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일을 해낸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볼 수 있다”며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말하는 재건과 회복은 우리의 재건과는 지향점이 사뭇 다르다. 이들은 단순히 무너진 시설과 집을 예전 그대로 복구하는데 천착하지 않고 ‘더 나은 재건(Building Back Better)’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더 나은 재건이란, 기후변화의 변수를 적용하는 데 있다.
홀거 교수는 “그 누구도 과거와 같은 규모의 홍수가 언제 다시 닥칠지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아는 한가지는 그 재난은 반드시 다시 온다는 것이고,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를 뿐”이라며 “그렇기에 우리 스스로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 그 방법을 찾는 것이 이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가며 반영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물, 철도 등 인프라 재건이 완료됐다고 해서 결코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고도 단언했다. 그는 “1910년 이후 가장 피해가 컸다고 알고 있었던 2016년 수해 이후 ‘100년 빈도 홍수’로 기준을 정의하고 대비했지만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2016년 규모 수량은 고작 20~30년에 한번 올 법한 홍수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만큼 폭우의 양을 가늠할 수 없다”라며 “기존의 낡은 지식만으론 반쪽만 해결하는 격인데, 우리가 지속적으로 새로운 방재기준을 세우고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공지영·이시은·신현정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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