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가곡 ‘그리운 금강산’은 인천이 주재한 노래다. 인천 강화 출신 한상억 시인이 노랫말을 쓰고, 역시 강화 태생인 최영섭 선생이 곡을 붙였다. 가장 한국다운 가곡을 써 왔다는 평가를 받는 최영섭 선생이 지난주 타계했다.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금강산’을 하늘에서나마 늘 가까이 할 수 있게 됐다. ‘그리운 금강산’은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남북 관계 복원을 염원하는 큰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위로해 왔다. 한반도의 끊어진 허리, 그 동쪽 끝 금강산의 노래를 서쪽 끝 강화도 출신 시인과 작곡가가 힘을 합쳐 만들었다니 경이롭기 그지없다.
최영섭 선생은 강화도, 인천 사랑이 각별했다. 인천이라면 크고 작은 데를 가리지 않고 가진 능력을 나누어 주었다. 2000년에 출간한 강화군 ‘삼산면지’에 실린 ‘삼산면가’에도 선율을 달았다. 인천 도심에서는 ‘부평구민의 노래’와 ‘계양구민의 노래’를 만들었다. 이달 7월부터 제물포구로 바뀌면서 행정구역 명칭으로 더 이상은 쓸 수 없게 된 ‘동구 구민의 노래’ 역시 그의 작품이다.
‘푸르른 소나무와 유서 깊은 화도진은 우리의 자랑’으로 시작하는 ‘동구 구민의 노래’는 조병화 시인이 작사했다. 조병화 시인의 ‘시심(詩心)’이 시작된 곳 또한 인천이다. 그의 첫 번째 시 ‘소라’가 인천 월미도 바닷가에서 나왔고, 그의 두 번째 시라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추억’ 역시 인천에서 빚어졌다. 그 자리에 여덟 살 아래 최영섭이 있었다. 젊은 조병화는 소줏병을 주머니에 차고, 병나발을 불며 ‘잊어버리자고/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하루/이틀/사흘’을 읊었고, 나이 어린 최영섭은 받아 적은 뒤 곡을 붙였다. 가곡 ‘추억’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최영섭 선생보다 열네 살 위인 고향 큰 형님 같은 한상억 시인의 유고시집 제목도 ‘그리운 금강산’이다. 1992년 11월, 미국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난 한상억 시인에게도 ‘그리운 금강산’은 잊을 수 없는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가 눈을 감은 지 꼭 1년 만에 나온 유고 시집의 제목 또한 그렇게 잡았으리라. 위대한 이의 죽음은 간혹 불가능해 보일 법한 일도 가능케 하는 힘이 있다. 최영섭 선생 사거(死去)를 계기로 인천시가 앞장서서 왕래 끊긴 지 오래인 금강산에 ‘그리운 금강산’ 기념비라도 하나 세우면 어떨까.
/정진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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