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 피해지역에 ‘커뮤니티센터’ 조성

비영리 사회단체, 아직도 주민과 소통·도움

일상 사라졌던 사람들 회복 구심점 역할

재난 직후에만 관심 쏠리는 국내와 대조

독일의 비영리 복지단체인 노동자복지연합인 AWO는 대홍수 이후 피해지역인 라인란트팔츠주 바트노이에나르 아르바일러군에 ‘AWO Quartierstreff(지역 커뮤니티 센터)’를 두고 피해자 일상회복을 지원하고 있다./신현정 기자 god@kyeongin.com
독일의 비영리 복지단체인 노동자복지연합인 AWO는 대홍수 이후 피해지역인 라인란트팔츠주 바트노이에나르 아르바일러군에 ‘AWO Quartierstreff(지역 커뮤니티 센터)’를 두고 피해자 일상회복을 지원하고 있다./신현정 기자 god@kyeongin.com

기후재난은 국가를 가리지 않는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는 삶의 터전을 무참히 짓밟았다. 당장 입을 옷도, 마실 물도, 먹을 것도 없었다. 그렇게 기록적인 폭우가 독일 서부를 강타한 지 5년이 흘렀다. 독일은 기후재난으로 삶이 무너진 피해자들의 일상회복 지원을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시민단체, 학계 등 사회 인프라를 총동원해 피해 직후부터 피해자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가 기후재난으로 침해된 피해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수년째 노력을 쏟고있다. 기후재난 발생 직후에만 과도하게 재원을 투입해 상황만 ‘수습’하고 그 이후로는 피해자 몫으로 ‘방치’하는 국내와는 달랐다.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바트노이에나르 아르바일러는 2021년 대홍수 당시 피해가 컸던 지역이다. 본보가 이 지역을 찾은 지난 5월, 주택이 즐비한 마을 중심에 ‘AWO OUARTIERSTREFF(지역커뮤니티센터)’ 라 적힌 건물이 보였다. 가정집과 크게 다를바 없는 아담한 외관에 어깨동무를 한 사람들이 그려진 곳이다. AWO는 우리말로 하면, 노동자복지연합으로 비영리 사회단체다. 대홍수가 발생하자마자 이 지역에 AWO의 전문가들이 투입됐다. 5년이 흐른 지금도 마을 중심에서 주민들과 소통하며 회복을 돕고 있다. 재난의 시작부터 회복 중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피해주민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센터를 찾았을 때도 주민들의 방문은 수시로 이어졌다. 특별한 일 혹은 용건이 있어야지만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길에 들러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이웃 주민들끼리 먹을 것을 들고 와 함께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폭우에 이웃과 집을 잃고 일상이 사라져버렸던 피해자들은 이 작은 센터를 중심으로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2021년 독일 대홍수 이후 피해지역인 아르바일러군에서 5년간 피해자 지원활동을 하고 있는 탄자 코니히(Tanja König) AWO Quartierstreff 센터장.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2021년 독일 대홍수 이후 피해지역인 아르바일러군에서 5년간 피해자 지원활동을 하고 있는 탄자 코니히(Tanja König) AWO Quartierstreff 센터장.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구호활동중 피해주민 직점 상담 가장 중요시

“가정마다 겪고 있는 사정 달라… 개별 조사”

“트라우마 호소, 일상회복 힘들어하기도”

‘혼자’ 아님 인식… 심리적 안정 찾도록 도와

1억1천유로 투입, 교류행사 40여개 프로그램

기후재난이 발생한 직후엔 이 곳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대홍수 직후부터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피해자를 돕고 있는 탄자 코니히(Tanja König) AWO Quartierstreff 센터장은 재난 직후 마을의 모습과 피해주민들의 상황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집이 사라져서 잘 곳도 없고 전기도 끊겼고 마실 물도 없었어요. 심지어 옷도 다 떠내려갔는데 젖은 옷을 입은 채 쌀쌀한 날씨를 견디고 있었죠. 문제는 가정마다 겪고 있는 피해가 모두 달라서 일단 시급하게 지원이 필요한 품목부터 개별 상담을 통해 조사했고, 빠르게 지원하는 것부터 시작했죠. 통상 가정마다 80여가지 품목이 지원될 수 있었어요.”

AWO가 구호활동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활동은 피해주민과 직접 상담하는 일이다. 처음 재난이 닥쳤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일 자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재난을 느끼는 바가 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어느정도 상황이 정리되고 나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비만 오면 강을 확인하며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일상회복을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피해자들과 직접 상담하면서 개개인의 상황을 계속 점검하고 뭐가 필요한지 소통하면서 채워주고 있습니다.”

독일의 비영리 복지단체인 노동자복지연합인 AWO는 대홍수 이후 피해지역인 라인란트팔츠주 바트노이에나르 아르바일러군에 ‘AWO Quartierstreff(지역 커뮤니티 센터)’를 두고 피해자 일상회복을 지원하고 있다. 피해자 지원제도 등 혜택을 알리는 팜플렛.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독일의 비영리 복지단체인 노동자복지연합인 AWO는 대홍수 이후 피해지역인 라인란트팔츠주 바트노이에나르 아르바일러군에 ‘AWO Quartierstreff(지역 커뮤니티 센터)’를 두고 피해자 일상회복을 지원하고 있다. 피해자 지원제도 등 혜택을 알리는 팜플렛.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2021년 7월 독일 대홍수 당시 독일 비영리사회단체 노동자복지연합 AWO가 아르계곡에서 펼친 긴급 구호 캠페인 모습. /독일 아르바일러군 제공
2021년 7월 독일 대홍수 당시 독일 비영리사회단체 노동자복지연합 AWO가 아르계곡에서 펼친 긴급 구호 캠페인 모습. /독일 아르바일러군 제공

재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피해주민의 가장 가까운 곁에서 함께 재난을 극복하는 이 과정은 피해자가 혼자가 아님을 인식하게 하며 ‘라포(Rapport)’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한순간 삶의 기반을 잃은 피해자가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심리적 안정을 찾는데 집중했다.

지난 1월 기준 AWO가 지원한 이들은 약 5천가구, 예산으로는 약 1억1천유로(약 1천794억원)이 투입됐다. 주요 활동도 40가지 다양한 분야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교육을 진행하기도 하고 피해주민들 간의 교류 행사로 공동체를 이어가려는 노력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대홍수 이후 5년째 피해자 회복을 지원하는 AWO가 피해주민들과 간담회, 심리치료등 40여개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회복을 돕고 있다. /AWO 제공
대홍수 이후 5년째 피해자 회복을 지원하는 AWO가 피해주민들과 간담회, 심리치료등 40여개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회복을 돕고 있다. /AWO 제공

“아직도 재건공사를 진행 중인 곳들이 있어요. 주민들 중에는 그 광경 자체가 트라우마로 다가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큰 버스를 빌려 공사장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다같이 소풍을 가기도 하고 온천 수영장을 함께 가서 기분을 전환하기도 해요. 또 주민들끼리 모임을 만들고 서로가 처한 상황을 공유하며 공감대를 얻기도 하고,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숲에 방문해 자연을 느끼는 정신테라피 치료도 진행하고 있어요. 또 학교에서 대피소 훈련을 게임으로 개발해 아이들이 재난이 닥쳤을 때 필요한 대피요령을 교육하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이 피해자 곁에서 오랜 시간 함께 쌓은 신뢰 속에서 지속적으로 소통하다보면, 피해를 극복하는 단계마다 피해자 개개인이 겪는 문제를 점검할 수 있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정부나 지자체가 제공하는 지원을 연계하기가 용이하다. 그만큼 피해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2021년 독일 대홍수 이후 트라우마를 겪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요가 등 교육 프로그램이 이뤄졌다. /독일 아르바일러군 제공
2021년 독일 대홍수 이후 트라우마를 겪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요가 등 교육 프로그램이 이뤄졌다. /독일 아르바일러군 제공

여름옷만 잔뜩 지원되죠. 정작 겨울에 입을 것이 하나도 없어요. 겨울쯤 되면 지원이 끊기거든요. 우리는 빠르게 수습하는데만 급급.

“피해자들에게 중요한 건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사회적 도움이에요. 정보는 어디서 얻는지, 지원을 받기 위한 서류 작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 입니다. 이런 도움을 받으며 서로 관계를 맺고 상황을 공유하다보면 오히려 남을 도울 수도 있죠. 장 보러 가야 하는데 차가 없는 이웃을 태워 간다던지, 서로 돕는 분위기들이 생겨나면서 공동체도 다시 형성될 수 있어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기후재난을 겪고 난 후 정부·지자체, 민간사회단체가 투입돼 피해자를 돕는 기간은 길어봐야 6개월 안팎이다. 그마저도 피해현장에 직접 개입해 피해자들과 대면하며 지원하는 기간은 훨씬 짧다. 가평의 이순호씨 부부의 사례를 보면 아예 지원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피해자들도 적지 않다. 기후재난을 오롯이 혼자 힘으로 극복해내야만 한다. 그래서 이전의 일상으로 회복하기를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경북산불현장에서 피해자들을 도왔던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도 이 점을 꼬집었다.

“국내에서 재난 피해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재난 초기에 너무 많은 자원과 인력이 불필요하게 쏟아진다는 점입니다. 정작 재난 초기엔 피해자들은 (회복을 위해) 어떤 지원이 장기적으로 필요한지 알 수 없어요. 정신이 없으니까. 시간이 지나봐야 서서히 알 수 있죠. 또 시점마다 필요한 지원들이 생겨나고요. 여름에 폭우가 내려서 집이 떠내려가니, 여름옷만 잔뜩 지원되죠. 정작 겨울에 입을 것이 하나도 없이 겨울을 맞이한다는 거에요. 겨울쯤 되면 지원이 끊기거든요. 빠르게 수습하는데만 (정부·지자체가) 급급해요. 한국에서 기후재난의 피해자가 된다는 건, 장기간 피해가 이어져 정작 필요할 땐 아무 자원도 도움도 요청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대홍수 이후 5년째 피해자 회복을 지원하는 AWO가 피해주민들과 간담회, 심리치료등 40여개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회복을 돕고 있다. /AWO 제공
대홍수 이후 5년째 피해자 회복을 지원하는 AWO가 피해주민들과 간담회, 심리치료등 40여개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회복을 돕고 있다. /AWO 제공

/신현정·공지영·이시은기자 g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