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가계 순자산 부동산 편중 기형

현금 흐름 고갈에 생산 기능 약화

기업지배구조 개선·주주 환원 강화

성장 엔진 재점화 묘안 구상해야

이장연 인천대 경제학 교수
이장연 인천대 경제학 교수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눈에 띄게 식어가고 있다. 왜 소비자는 돈을 쓰지 않고, 기업은 투자를 주저할까? 바로 부동산에 갇혀 움직이지 않는 가계 자산 포트폴리오가 그 주범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 순자산 비율을 보면 한국은 5.3배로, 미국(5.7배)이나 일본(5.2배)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부유한 국가다. 그러나 속살을 들여다보면 기형적이기 짝이 없다. 미국과 일본의 가계는 자산의 60% 이상을 주식, 채권 등 유동성이 높은 금융자산으로 굴린다. 반면 한국 가계의 금융자산 비중은 고작 35%에 불과하며, 나머지 65%는 고스란히 부동산이라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에 묶여 있다. 특히 미국은 부자일수록 금융자산 비중이 높지만, 한국은 순자산 상위 1% 그룹의 부동산 비중이 80%에 달할 만큼 부의 집중이 부동산으로 귀결되는 역설적인 구조를 보인다.

이처럼 자산이 부동산에 과도하게 집중될 때 발생하는 첫 번째 비극은, 현금 흐름 고갈이다. 부유한 유동성 제약 가구로 불리는 이들은 수억에서 수십억 원짜리 집 한 채를 가지고 있어 겉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없이 부유해 보이지만, 정작 당장 쓸 수 있는 통장 잔고는 한 달 치 소득에도 못 미치는 유동성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필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의 약 50%가 유동성 제약 상태에 직면해 있으며, 이 중 소득이 적지 않으나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부유한 유동성 제약 가구의 비중은 43%로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이다. 미국(20%)이나 영국(23%)에 비해 두 배에 달하는 이 기이한 수치는, 우리가 왜 내수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자녀 교육비 지출과 주택담보대출 상환 부담이 동시에 정점에 이르는 수도권 40~50대 가구에서 이러한 현상이 가장 두드러진다.

부동산 편중의 두 번째 비극은 국가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생산자본 구축 효과이다. 여유 자금이 안전하고 수익률 높은 주택으로만 쏠리다 보니, 정작 국가 경제의 성장 동력이 되어야 할 혁신 기업이나 신기술 연구개발 부문으로 흘러들어가야 할 자금줄이 마르게 된다. 주택은 지어놓으면 주거 서비스라는 효용을 주지만 새로운 부가가치를 연속적으로 창출하는 생산 기능은 약하다. 수십 년간 자금이 생산적인 공장과 기술이 아닌 콘크리트에 고착되면서 한국 경제의 시동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부동산 공화국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일까? 단순히 정부의 규제나 세금만으로는 세대 간 갈등만 키울 뿐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보유세를 높이면 일시적으로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고 청년 세대의 주거 부담을 낮춰 후생을 높일 수 있지만, 집을 가진 고령 세대의 조세 부담을 키운다. 반대로 자본시장 투자 지원책을 쓰면 이미 자산을 많이 축적한 고령층이 보조금 혜택을 누리게 되어 세대 간 후생의 명암이 엇갈린다. 결국 핵심은 여유 자금이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기술 혁신으로 이어지는 내생적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데 있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자발적으로 부동산 대신 자본시장에 돈을 묵힐 수 있도록 기업 지배구조를 과감히 개선하고 주주 환원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기업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AI 등 미래 기술 진보가 동반된다면, 자본수익률이 올라감에 따라 가계 자산이 부동산에서 금융자산으로 매끄럽게 전환될 수 있다.

오랜 기간 계속된 한국의 저출산은 2030년 중반부터 기조적인 주택 수요 위축과 주택 가격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집에 전 재산을 올인하고 가격이 영원히 오르기만을 바라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 집 한 채가 삼켜버린 가계의 지갑을 다시 열고, 그 자금이 기업의 핏줄로 이어져 성장 엔진을 재점화하는 일, 그것이 벼랑 끝에 선 한국 경제가 마주한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정부는 부동산에 묶인 가계 자산을 해방해 경제의 가장 최전선에 있는 혁신 산업으로 흐르도록 묘안을 구상해야 한다. 우리도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살 때가 아니라, 집 속에 갇힌 영혼을 구해내야 할 때다.

/이장연 인천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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