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축구장, 공은 이어져야 한다는 진리

학교도 학생·동료·지역에 좋은 패스 보내야

더 많이 연결될 때 기회 다시 전진할 힘 얻어

이희학 목원대 총장
이희학 목원대 총장

초등학교 5학년 때 1년간 축구선수로 운동장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선수라고 부르기에는 서툴고 작은 아이였지만 당시 마음만은 국가대표 못지않았다.

수업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흙먼지 속으로 달려들었다. 운동화 끈이 풀린 줄도 모르고 뛰었고,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도 공만 다시 굴러오면 금세 일어났다. 공 하나를 따라 운동장을 달리던 그 시절에는 세상이 온통 축구장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토록 좋아하던 축구가 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공이 발끝에 닿는 순간이면 마음이 앞섰다. 한 번 잡은 공은 좀처럼 내주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이 옆에서 손을 들어 “여기”를 외쳐도 들은 척하지 않았다. 골대만 보고 달리다 수비수에게 빼앗기고 나서야 멀찍이 비어 있던 친구가 보였다.

어느 날 코치 선생님이 말했다. “공을 잘 차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을 보지 못하면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다.” 어린 마음에 억울했다. 하지만 그 말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때는 골을 넣는 선수가 가장 빛나 보였다. 그러나 축구를 배우며 조금씩 알게 됐다. 골은 한 사람의 발끝에서 완성되지만, 그 전에 수많은 움직임이 있다. 누군가는 뒤에서 막고 누군가는 빈 공간을 만들며 누군가는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에게 공을 내준다. 때로는 공을 잡지 않은 선수가 경기를 바꾼다. 공을 오래 가진 사람이 아니라 팀을 살리는 사람이 좋은 선수였다.

오늘의 대학도 그 운동장 위에 서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산업구조 변화, 인공지능(AI)의 확산은 대학에 익숙한 방식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묻는다. 이 대학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이 배움은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대학은 이 질문 앞에서 혼자 공을 몰고 가는 방식으로 답할 수 없다.

대학의 변화는 총장 한 사람의 선언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교수의 수업과 연구, 직원의 세심한 행정, 학생의 도전, 동문의 응원, 지역사회의 협력 등이 맞물릴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간다. 각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향해야 할 곳은 학생의 성장과 성공이라는 골문이다.

좋은 패스는 받는 사람을 빛나게 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로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은 지식을 넘겨주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학생이 어디를 향해 뛰고 있는지 살펴서 자기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일이다. 어떤 학생은 연구실에서, 어떤 학생은 창업 현장에서, 또 어떤 학생은 봉사 현장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다. 대학은 학생을 하나의 기준으로 줄 세우는 곳이 아니라 각자의 포지션을 찾아 끝까지 뛰게 하는 곳이어야 한다.

AI 시대일수록 이 가치는 더 중요하다. 정답을 찾는 속도는 기계가 앞설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어떤 선택이 우리를 살리는지, 어떻게 함께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지식만이 아니라 질문하는 힘, 협력하는 태도, 실패 뒤에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길러줘야 한다.

축구에서 흐름이 좋지 않을 때 서로를 탓하는 팀은 쉽게 무너진다. 반대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 패스를 이어가는 팀은 끝내 기회를 만든다.

지금 대학이 마주한 위기도 마찬가지다. 어렵다고 흩어질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연결돼야 한다. 학생에게, 동료에게, 지역사회에게 좋은 패스를 보내야 한다. 그 패스들이 이어질 때 대학은 다시 전진할 힘을 얻는다.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배운 진리가 있다. 공은 혼자 오래 붙잡고 있을 때보다 필요한 순간 좋은 방향으로 이어질 때 살아난다.

대학도 그렇다. 함께 뛰며 서로를 살리고 학생의 미래를 향해 패스를 이어가는 대학만이 다음 경기를 준비할 수 있다. 그 길 위에서 대학의 미래도 조금씩 또렷해질 것이다.

/이희학 목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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