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정 지역사회부(구리) 차장
권순정 지역사회부(구리) 차장

지난달 29일 야구 경기 중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를 떼창한 배재고등학교가 최근 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사과했지만 파장은 여전하다.

며칠 전 구리시의 한 상가에서 만난 50대 여성은 자신의 20대 아들과 이 문제를 두고 겪는 갈등을 토로했다. 평소 정치적 입장을 달리해 온 모자는 이번엔 ‘스타벅스 가야지’를 두고 엄마는 해서는 안될 조롱이라 비판하고, 아들은 ‘조롱도 표현의 자유’라고 맞받으며 격한 언쟁을 했다는 것이다.

배재고의 잘못은 논쟁거리가 아니다. 조롱이 잘못이라는 것을 전제로 이 일로 학생들의 미래를 꺾어서는 안된다는 우려가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1일 이지애 국민의힘 미디어 대변인은 극우 유튜버 채널에서 경기 과열 중 상대 사기를 꺾으려는 의도가 섞인 스타벅스를 그저 커피숍으로 치환했다. 그는 “학생들이 ‘스타벅스 가자, 커피 마시러 가자’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 부분인데 이걸 갖고 교육위원회에 회부해 조치하겠다라는 것은 너무 지나친 조치”라고 했다. 덕분에 ‘스타벅스 가야지’가 ‘표현의 자유’로 정당화됐다.

여기에 부총리급인 이병태 전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페이스북에 “5·18이 성역이 됐다”고 비판하자, ‘스타벅스 가야지’는 기득권에 도전하는 성전의 언어가 됐다. “국민의힘이 (혐오를)끊임없이 옹호하고 부추기고 선동하고 있다”는 홍성규 진보당 대변인의 비판을 국민의힘을 넘어 사회 지도층으로 확대해야 할 판이다. 윗물(?)의 혐오 부추김은 결국 국민들의 일상을 갈등으로 몰아넣었다. ‘조롱도 표현의 자유’라는 아들의 주장에 가슴을 친 엄마의 스트레스는 따져보면 사회 지도층의 무분별한 언어 사용 때문이다.

방패처럼 자리 잡은 ‘표현의 자유’는 내 거친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국민 기본권으로서 표현의 자유는 헌법 18조 통신의 자유, 21조 언론출판 집회결사의 자유의 다른 말이다. 21조는 이 자유에 국가가 끼어들 여지를 차단했다. 이는 세계인권선언 등에서 ‘간섭받지 아니하고 의견을 밝힐 권리’를 천명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 조롱도 표현의 자유인가. 아니다. 헌법 21조는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국제적으로도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나의 자유는 침해될 수 없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위해원칙을 함께 기준으로 삼는다.

상대방의 아픔과 약점을 갖고 놀리는 조롱은 위해다. 타인의 명예를 짓밟는 행위다. 시민혁명에서 출발한 근대 정치체계는 자유 평등 천부인권을 핵심이념으로 삼는다. 사람 위에 사람 없으니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그 첫번째다. 그런데 상대를 폄훼하는 조롱이 표현의 자유라니, 호들갑떤다는 비판을 떠안고 좀 과장하면 근대를 이룬 철학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중이다.

문제는 ‘아들’이 결코 특정 개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미 교내에서 지역비하나 성차별 언어로 상대방을 놀리는 밈, 조롱의 언어가 유행한지 오래다. 이번 사태는 그 세대의 놀이가 된 혐오표현이 밖으로 새어나왔을 뿐이라는 진단이 높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기득권 세력은 반성을 거듭해야 한다. 특히 공동체 사회의 안녕은 뒤로 하고 말장난으로 정쟁하는 정치권은 끝없는 반성문을 써야 한다. “타인의 고통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공감해야 할 청소년들이 왜 역사적 비극을 ‘재미’로 소비하게 되었는지 우리 사회가 뼈아프게 자성해야 한다”고 요구한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지적을 새겨야 한다.

/권순정 지역사회부(구리) 차장 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