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월급제 시행’ 2028년까지 2년 미뤄
노사 합의땐 최대 40% 기존 근로방식 유지
‘열악 처우 개선하기전 또 유예카드’ 반발
택시노동자 고영기(56)씨의 인천 남동구 통신탑 고공농성이 100일을 넘겼다. 지난 8일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이하 택시지부)와 고씨의 고공농성을 응원하는 ‘고공농성 100일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2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인천 남동구 길병원 사거리에서 ‘고공농성 100일 연대의 날’ 행사를 열었다. 고씨는 통신탑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도로를 가득 메운 참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고씨는 지난 3월 29일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이하 택시발전법) 개정안’ 폐기를 요구하며 통신탑에 올랐다. 고씨의 바람과 달리 택시발전법 개정안은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했으며, 5월 12일 공포됐다. 개정안 공포는 결국 이뤄졌지만, 고씨는 택시업종을 간주근로시간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시행령 개정을 새로운 요구로 내세우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 택시월급제 유예 놓고 엇갈린 시선… “개악” vs “현실 반영”
택시발전법 개정안은 올해 8월 전국 확대 시행 예정이던 ‘택시월급제’를 2028년 8월까지 2년 더 유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노사 합의가 있으면 법인택시의 최대 40%는 주 40시간 기준 월급제 대신 기존 근로방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택시월급제는 법인택시 기사가 운송수입금 전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주 40시간 이상 근무를 기준으로 고정급을 지급받는 제도다. 장시간 운행을 유발하는 사납금 중심 임금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19년 법제화됐고, 서울에서는 2021년부터 시행 중이다. 서울 외 지역도 올해 8월부터 확대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이번 개정안이 공포되며 다시 미뤄졌다.
고씨가 속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는 개정안을 사실상 월급제를 무력화한 ‘개악’으로 규정한다. 월급제를 시행해 보지도 않은 채 다시 유예했고, 기존 근무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예외까지 둬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렸다는 이유다.
고씨는 “택시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제도를 만들었으면 최소한 시행하고 평가한 뒤 보완해야 하는데, 제대로 시행도 해보지 않은 채 정치권은 또다시 유예부터 했다”며 “국토교통부가 구성한 관련 TF에서도 월급제 시행을 감당할 수 있는 지역이 절반을 넘는 것으로 나왔고, 카드매출 등을 반영해 제대로 분석하면 시행 가능한 지역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일부 사업주의 주장만 반영해 법 시행을 또 미룬 것이 참담하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택시노조와 법인택시업계는 현실을 반영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법인택시는 노사가 정한 소정근로시간을 기준으로 기본급을 지급하고, 기준운송수입금(옛 사납금)을 초과한 운송수입의 일부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임금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일부 택시노조는 주 40시간 기준 월급제가 성과급 비중을 줄여 운송수입이 많은 기사의 실질 소득을 낮출 수 있고, 짧은 시간만 운행하기를 원하는 고령 기사에게 장시간 근무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업계는 영세 법인택시업체가 많은 상황에서 주 40시간 기준 월급제를 일괄 시행하면 경영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천의 한 법인택시업체 관계자는 “현재도 기사 수급난과 경영난을 겪는 업체가 적지 않다”며 “소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늘리면 기본급뿐 아니라 퇴직금과 연차수당, 4대 보험 등 업체가 부담해야 할 인건비도 함께 증가한다. 이를 한꺼번에 감당하지 못해 폐업하는 회사도 많아질 수 있는 만큼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업장 밖 활동 이유 ‘간주근로시간제’ 규정
디지털운행기록장치 등 객관적인 확인 가능
“노동부, 택시업 적용 제외 시행령 마련해야”
■ 공포 이후 새 쟁점은 ‘간주근로시간제’
고씨는 법 개정 이후에도 택시노동자의 실제 근로시간을 임금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택시월급제 시행이 다시 미뤄진 상황에서 간주근로시간제를 개선해 실제 근로시간을 제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근로기준법 제58조는 사업장 밖에서 근무해 사용자가 실제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노사 합의로 정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보는 ‘간주근로시간제’를 규정하고 있다. 택시업은 운행 대부분이 사업장 밖에서 이뤄진다는 이유로 이 제도를 적용받고 있어, 실제 근로시간과 다른 노사가 정한 소정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임금을 산정할 수 있다.
고씨가 소속된 택시지부는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개정해 택시업종을 간주근로시간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현재 법인택시에는 디지털운행기록장치(DTG), 택시운행정보관리시스템(TIMS), 위성항법시스템(GPS)을 이용해 운행시간과 이동 경로, 승객 승·하차 기록 등이 초 단위까지 저장된다. 근로시간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만큼, 택시업을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직종’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7일 성명을 내고 “디지털 장비로 노동시간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데도 실제 10시간 넘게 일한 노동을 3~4시간으로 인정하는 간주근로시간제를 유지하는 것은 임금도둑질을 방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노동부는 택시업종을 간주근로시간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시행령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병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인천지회장은 “이제는 근로기준법 시행령이나 고용노동부 지침을 통해 택시업종을 간주근로시간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 위해 노조 차원에서도 장기전을 이어갈 것”이라며 “택시는 근로시간이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직종인 만큼 노동시간을 제대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임금을 지급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윤지기자 sso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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