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남겨진 사람들- 독일 대홍수 (3) 공공·민간의 유기적 협력
‘KAHR’ 프로젝트, 즉각 지원·도시 재구조화
기후변화로 인한 재발 상정하고 과학계 참여
시민단체 ‘AWO’ 현장서 피해자 밀착 지원
공공과 연결 고리 역할, 적재적소 도움 가능
기후재난을 겪고 나면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특히 기후재난은 예측이 불가능한 탓에 대비를 한다고 해도 피해를 막는 것이 쉽지 않고, 피해의 정도를 예측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기후재난은 예방 만큼이나 피해에 따른 사회적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독일 대홍수 이후 아르바일러가 겪었던 사회적 혼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리와 달랐던 것은 지역 곳곳에 뿌리내려진 사회적 인프라가 피해자들의 일상회복에 큰 힘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독일 아르바일러가 기후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을 살펴보며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공공과 민간이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면서도 오랜시간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상호협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홍수가 발생한 직후 독일 연방정부와 주 피해지역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라인란트팔츠주정부가 재건지원기금을 조성해 재원을 마련했다. 아르바일러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지자체가 이 기금을 활용해 즉각적인 피해 지원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대학 등 학계와 손잡고 무너진 도시를 재구조화하는 프로젝트, ‘KAHR’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KAHR 프로젝트의 큰 줄기는 피해를 겪은 지자체가 기후위기, 도시구조 등 각계의 전문가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피해의 현장에서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더 나은 재건’을 목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방정부 및 주정부의 역할은 재정 지원과 도시 재건에 필요한 법 개정 등 큰 틀의 행정적 지원이다.
아르바일러가 특히 과학계와 손을 잡고 재건에 나선 데는 기후위기로 인해 재난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을 상정하고, 이에 대비한 도시구조를 만들어야 피해가 최소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 재난을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코르네리아 바이가너 아르바일러 담당자는 “과학계의 목소리와 그들의 노하우들이 피해지역의 도시 재건이 (기후위기를 대비한) 미래지향적 방향으로 가는데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 있다”며 “이미 부분적으로 재건이 시작된 것들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줬고, 훌륭한 해답을 찾고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프로젝트의 공동대변인을 맡은 홀거 쉬트룸프 아헨 공과대학 교수도 “아르바일러군의 경우 작은 도시여서 스스로 회복이 어렵고 다른 도시의 피해와 달리 관심에서도 멀어지기 쉬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보통은 건물을 다시 지으면 끝인데, 기후변화라는 변수가 있어 재건을 시작하기 전에 지역의 구조자체를 변화시켜야 하고 이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홍수 이후 미래 홍수를 방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 데르나우 마을 교량은 학계의 연구가 바탕이 됐다. 이 다리는 아르계곡 인근 데르나우 마을에 위치해 있고 대홍수 당시 산에서 쓸려온 잔해물로 인해 무너졌다. 재건된 다리는 차량 두 대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 폭이 넓다. 또 잔해물이 쓸려 내려와도 물길을 막지 않도록 교각 수를 줄이고 간격을 넓어졌다.
홀거 교수는 “나뭇가지나 잔해물이 다리에 걸려 물길을 막는 이른바 ‘폐색 현상’을 줄이고 수위상승을 막기 위해 설계된 다리”라며 “애초에 가파른 산비탈과 오랜 도로 근처에 위치했는데, 지형을 감안해서 홍수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치밀하게 설계했다”고 설명 했다.
도시 인프라도 기후위기에 걸맞는 방재기준에 따라 차별성을 두고 도시를 재구조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이동이 어려운 약자들이 있는 병원과 요양원, 마을 전체에 전기와 난방을 공급하는 지역에너지 발전소 등 필수 시설들은 그 성격에 따라 방재 기준이 다르게 설정하고 위치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연구결과에 따라 현재 재건이 이뤄지고 있는 ‘레바나 학교(Levana-Schule)’ 는 현재 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로, 학생 대부분이 휠체어를 타거나 24시간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재난이 발생하면 매우 취약한 시설이다. 대홍수 피해 이후 KAHR 연구를 통해 해당 학교를 더 안전한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한 새로운 방재기준을 만들었고, 이를 적용한 설계가 반영됐다.
피해자과 함께 생활하며 물리적·정신적 피해를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 AWO는 공공과는 별개로 독자적인 구호활동을 하고 있었다. 특히 대홍수 직후, 현장에 AWO 전문가들이 급파돼 피해자를 돕는 거점을 마련했고 지금까지 피해자의 일상회복을 위해 피해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지원했다. 이런 구조가 가능한 건 독일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풍부한 사회적 인프라 덕분이다.
AWO는 주로 노인, 어린이, 이민가정 등 사회적 약자를 돕고 재난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을 돕는 비영리사회단체다. 각 주마다 본부가 마련돼있고 사회복지, 트라우마치료, 사회분석 등 전문가들이 포진돼있다. 아르바일러에서 대홍수 피해자를 지원하는 탄자 코니히 AWO Quartierstreff 센터장도 원래는 라인란트팔츠주의 AWO 소속으로 홍수 직후 파견됐다.
탄자 코니히 센터장은 “우리 단체 말고도 THW 등 여러 사회단체에서 대홍수 직후 현장에 투입됐다”며 “20곳 가까운 단체들에서 모금한 기금을 통해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르바일러군이 독일의 대도시들과 떨어진데다 와인농장들이 즐비한 산간지역이라는 점을 비추어보면, 독일 지역 전반에 실핏줄처럼 연결된 각종 사회단체들이 재난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 곁에서 밀착형 지원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기후재난을 겪은 지역이 서울에서 멀수록, 농어촌 지역일 수록 피해 직후에만 반짝 사회의 도움을 받았다, 결국 피해자들만 남게 되는 현상이 짙었다.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은 “기후재난이 지역에서 발생하면 피해구제 활동을 할 수 있는 구심점이 없다. 이를 지원할 사회적 자본이 없고 시민사회단체, 하물며 변호사 같은 전문가도 없어 결국 피해자가 스스로 극복하거나 포기하면서 팔자 탓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들 사회단체의 존재는 공공과 피해자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됐다. AWO가 피해현장에서 중점적으로 벌인 활동 중 하나는 정부·지자체가 지원하는 각종 구제제도를 피해자에게 알리는 일이다. 피해자 개개인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이들 단체가 적재적소에 지원 정보를 알려주고, 신청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축제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현장을 찾아 현재 공공이 지원하고 있는 피해 구제 제도를 홍보하고 상담하는 일도 멈추지 않는다.
탄자 코니히 센터장은 “박물관이나 쇼핑몰 처럼 지역사회 네트워크가 가능한 곳을 찾아 알린다. 겨울에는 커피와 차를 들고, 봄에는 꽃다발을 만들어 집집마다 방문해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홍보하고 연결한다”며 “(독일도) 처음엔 다양한 정보를 알기가 어렵고 피해자들이 스스로 챙길 여력도 없다는 점을 알고 방문, 전화 등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주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재난이 일어나면, 정부나 지자체의 공식 홈페이지와 대피소 현수막 등 피해자가 ‘알아서’ 정보를 찾고 지원을 직접 신청하지 않으면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시은·신현정·공지영기자 se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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