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절차 ‘다른 눈’ 檢 보완수사

‘장윤기 사건’으로 문제 드러나

허물어진 제도의 피해 ‘국민 몫’

대안 없는 폐지, 개혁 호칭 무색

이재홍 변호사·수원경실련 집행위원
이재홍 변호사·수원경실련 집행위원

고백하자면 칼럼 쓰는 일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초고를 마칠 때마다 아내에게 먼저 보여주는 이유다. 아내는 내가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보이지 않던 오류를 번번이 짚어낸다. 그때마다 부끄러움보다 신기함이 앞선다. 분명히 여러 번 읽었는데 왜 내 눈에는 끝내 보이지 않았을까. 사람은 자기 오류를 스스로 찾지 못한다. 쓴 사람의 눈이 아니라 다른 눈이 봐야 비로소 보이기 때문이다.

형사절차에서 그 ‘다른 눈’의 노릇을 하는 것이 검사의 보완수사다. 1차 수사를 한 기관이 아닌 다른 주체가 그 수사의 빈틈과 오류를 바로잡는 것, 이것이 보완수사의 본질이다. 중이 제 머리를 깎지 못하듯 수사의 과오는 수사한 사람 스스로 교정하기 어렵다. 경찰 수사는 검사가 통제하고 검사의 기소는 법원이 통제하도록 근대 형사절차가 설계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최근, 이 보완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대신 남겨둔 ‘보완수사요구’는 결국 처음 수사한 그 경찰에게 사건을 되돌려 보내 다시 살펴보라는 제도다. 초고를 쓴 사람에게 교정까지 맡기는 셈이다.

다른 눈이 무엇을 찾아내는지는 최근 장윤기 사건이 보여줬다. 경찰 수사의 문제가 드러난 것은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를 통해서였다. 조직적으로 은폐된 사건일수록 기록에 허점을 남기지 않는다. 기록만 보아서는 보완수사를 요구할 단서조차 찾을 수 없다. 수사 주체를 바꿔 다시 들여다보는 절차가 없다면 이런 사건은 영영 묻힌다. 제도가 사라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경찰이 무혐의로 불송치한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이의신청을 하고 검사가 기록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해도, 검사는 피해자를 불러 물어볼 수 없다. 원래 결정을 내린 경찰에 다시 수사를 요구할 수 있을뿐인데, 경찰이 스스로 내린 결정을 뒤집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성폭력 피해자 단체들이 절박하게 호소하는 대목이다. 잘못된 기소는 법원이 무죄로 바로잡을 수 있지만, 기소해야 할 사건이 불기소로 묻히면 법원이 손댈 방법조차 없다. 억울한 피의자도 마찬가지다. 기소되기 전 검사 앞에서 자기 사정을 말할 기회, 헌법상 적법절차가 보장하는 청문의 기회가 사라진다. 얼굴 한 번 내보이지 못한 채 재판정에 서게 되는 것이다.

수사의 질도 무너진다. 연간 송치 사건은 100만건에 육박하고, 현재 검찰은 그 절반가량에서 직접 보완수사를 거쳐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이것이 전부 요구로 몰리면 경찰이 감당할 수 없고 검사는 기록만 보고 기소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지금은 전화 한 통이면 확인될 일이 문서 왕복으로 한 달이 걸리고, 짧아진 구속기간에 쫓긴 졸속 기소는 호화 변호인단을 갖춘 범죄자에게만 축복이 된다. 공소시효가 임박한 사건이라면 상황은 더 아득하다.

부작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긴급체포에 대한 검사의 통제는 승인에서 통보로 낮아졌고, 2만명이 넘는 특별사법경찰에 대한 수사지휘는 대안 없이 삭제됐으며, 연간 20만명에 이르는 기소유예를 앞으로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한 답도 없다. 이 숱한 우려에 돌아오는 답은 ‘검찰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뿐이다. 검찰권 남용을 통제하고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개혁의 원칙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 논의는 형사사법 전체를 설계하는 냉정한 작업이 아니라, 검찰에게 수사권은 물론 예산과 인력까지 무엇을 얼마나 더 빼앗을 것인가를 겨루는 정치적 경쟁으로 변질됐다. 실체적 진실 발견, 피해자 보호, 신속한 정의 실현이라는 형사절차의 기본 원리는 뒤로 밀려나고, 수사·기소 분리라는 구호만 신앙고백처럼 반복된다. 지금의 논의에서 정작 보이지 않는 것은 ‘국민’이다.

정치인들의 권력투쟁은 언젠가 끝난다. 그러나 허물어진 제도의 빈틈은 그 싸움과 무관한 국민이, 그중에서도 가장 힘없는 피해자들이 오래도록 감당해야 한다. 나의 어설픈 초고야 아내가 바로 잡아 주면 그만이지만, 형사사법의 오류는 누군가의 인생을 대가로 치른다. 대안 없는 폐지가 개혁이라는 이름을 달 수는 없다.

/이재홍 변호사·수원경실련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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