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 여파로 십수 년 다닌 안경점 문 닫아
단지 동네마트 한 곳 아닌 수백 개의 일터
약탈적자본 지역경제 무너뜨린 참혹 기록
십수 년 드나들었던 우리 동네 안경점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000 안경원입니다. 홈플러스 폐업 관계로 인해 저희 안경원도 폐업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8월31일까지 재고 정리 세일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고 그동안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법원이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하기 이틀 전이었다. 2주 안에 2천억원의 자금을 마련해 항고하면 회생절차를 재개할 가능성은 열어두었지만 이를 낙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제 꼭 닷새를 남겨뒀다.
법원 결정의 배경은 단순한 자금 부족이 아니다. 사업을 계속 유지하는 것보다 청산할 때의 가치가 더 높다는 판단, 영업을 지속할수록 임금·물품대금·세금 같은 공익채권만 급증한다는 현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생을 떠받칠 책임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관적 전망이 겹쳤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으로 1천206억원이 들어왔지만 지방세 미납 관련 질권 설정과 미지급 급여, 그리고 운영비 변제에 대부분 소진됐다. 공익채권은 여전히 1조원대를 웃돈다. 2천억원이 아니라 그 몇 배를 들이부어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수렁이다. 지난해 3월 이후 회생절차 개시로 주어졌던 시간은 소생(甦生)의 시간이 아니라 누란(累卵)의 시간, 적체(積滯)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와중에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 메리츠금융은 끝내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만 해댔다. 메리츠는 MBK와 김병주 회장이 먼저 책임 있게 돈을 내고 보증을 서야 한다고 했고, MBK는 메리츠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은 채 청산 쪽 이익만 계산한다고 맞섰다. 기업의 생사보다 각자의 손실 최소화가 더 중요해진 순간, 회생은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시장(市場)에 맡긴다며 지켜만 보고 있다가 이제야 내놓기 시작하는 정부의 이런저런 대책이나 당권 장악에 매몰된 여당 지도부의 무관심은 이미 청산을 전제하는 듯하다.
동네 홈플러스 한 곳은 단지 동네 마트 한 곳이 아니다. 그 점포를 중심으로 생계를 꾸리던 수백, 수천 개의 작은 삶이 매일 출근하던 일터다. 이제 남은 건 파산의 처참한 후유증뿐. 체불임금 피해 노동자만 1만2천 여명, 규모는 330억원대다. 임금은 물론 퇴직금 지급도 흔들린다. 피해는 직고용의 경우에만 그치지 않는다. 주차관리, 청소, 카트, 배송, 시설, 보안, 판촉 등 용역인력까지 엮여 있다. 누군가는 월세를 못 내고, 누군가는 아이 학원비를 끊어야 하며, 누군가는 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해 살벌한 독촉장을 거듭해서 받게 될 것이다. 저이들의 파산은 서류 한 장으로 끝나지만, 이네들 삶의 붕괴는 저마다 다른 방식과 깊이로 길게 길게 이어질 것이다.
납품업체와 임대 매장의 타격은 더 잔혹하다. 미정산 납품 대금이 평균 7억원을 넘는다는 조사도 있다. 홈플러스 의존도가 절반을 넘는 업체가 수두룩하고, 80% 이상인 곳도 있다. 대기업 마트 한 군데와 맺은 거래망이 하루아침에 끊기면 그 뒤엔 줄도산이다. 납품업체는 자기 협력업체에 돈을 못 주고, 그 협력업체는 다시 원재료업체와 운송업체에 대금을 못 주게 된다. 임대 매장을 운영하는 상인은 보증금과 권리금, 인테리어 비용과 재고자산을 한꺼번에 잃는다. 불 꺼진 매장은 동네의 어둠이 되고 빈 점포는 지역의 공동(空洞)이 된다. 그 어둠과 공동이 지역경제의 붕괴와 소멸을 부른다.
우리 동네 홈플러스가 무너지는 장면은 단순히 한 기업의 시장 퇴출 과정이 아니다. 나쁜 자본이 성실한 시민들에게 어떤 당혹감과 어떤 상실감을 안겨줄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약탈적 자본이 지역사회의 경제구조를 어떻게 허물어뜨리는지를 보여주는 참혹한 기록이다.
그러니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동네 홈플러스의 몰락은 누구의 책임인가. 빚으로 회사를 삼키고 자산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한 사모펀드의 탐욕, 담보와 회수액만 셈한 채 버틴 금융채권자의 타산, 변화를 읽지 못한 경영의 무능, 시대착오적 규제의 무책임, 그리고 눈앞의 재난을 그저 지켜만 본 정치와 행정의 우둔(愚鈍)이 합작한 사회적 참사 아닌가.
/이충환 언론학 박사·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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