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남겨진 사람들-독일 대홍수 (4) 피해자 관점에서 시작되는 회복
‘기술적 측면’ ‘사회적 측면’ 함께 고려
독일 아르계곡, 저류조 만들어 집터 보존
주민과 신뢰 쌓은 지역 시민사회단체
중간 지원조직 역할로 피해자 입장 도움
“중요한 건, 아르계곡이 주민들의 고향이고 그들은 계속 이곳에서 살고, 일하며, 머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독일 대홍수 이후 아르바일러의 +재건을 위해 민관학이 함께 진행하는 KAHR 프로젝트가 최근 심도있게 논의하는 문제는 ‘저류(물가두기)’다. 재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대홍수의 원인과 피해 당시의 상황 분석 등을 통해 실질적 인프라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면 기후재난이 다시 찾아왔을 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대홍수가 일어났던 아르계곡 인근 마을 대부분이 파괴됐을 만큼 기후재난에 취약하지만 주민들 상당수는 그 곳에 다시 집과 가게를 짓거나 보수해 여전히 살고 있다. 삶의 터전을 포기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쉽지 않다.
이때문에 KAHR 공동대변인인 홀거 쉬트룸프 아헨공과대학 교수는 기후재난 발생시 아르계곡이 가진 지형적 취약성을 보완하는 ‘기술적 측면’과 피해자인 지역주민들의 ‘사회적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대형 홍수가 발생했을 때 강물이 차지하는 공간이 계곡 전체에 달합니다. 다시 재난이 일어났을 때 주민들의 삶의 터전은 또 강물에 내어주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원래 살던 그 자리에 또 집을 짓고 있습니다. 17만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이 곳이 고향이고 살던 곳인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에요. 결국 (주민들 입장에서) 삶의 공간을 내어줄 수도 없고, 비를 안오게 하거나 물을 마법처럼 사라지게 할 수 없으니, 기술적으로 거대한 저류조를 만들어 물을 가두어아죠.”
피해현장이면서 삶의 터전인 곳에서 일상을 지속하는 피해자이자 주민들을 우선해야 하면서도, 기후재난 피해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두가지 방향성을 고민하고 방법을 찾는 것이 KAHR의 기저에 깔려있는 셈이다.
코르네리아 바이가너 아르바일러 담당자도 주민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고, 정치권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예산을 주는 정부나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민들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삶의 연속성을 고려하는 것이 재건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오히려 공공이 나서서 대학·연구소 등 민간의 참여와 연대를 강조하는 데는 이들이 제공하는 객관적 근거들이 주민과 더 나은 방향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강 바로 옆에 유수지를 조성해 물을 저류할 수있는 공간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2021년과 같이 극단적인 재난 상황에선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 큰 재난이 닥쳐도 이 계곡과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비가 실제로 땅에 닿는 하천유역의 더 높은 상류에 물을 가두는 대규모 기술적 저류시설이 필요합니다. 과학계의 연구가 저류시설 건립의 근거를 입증하는데 ‘연대’하고 있고, 주민들에게도 공동체의 상생을 위해 이주 등의 불편을 감수하자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AWO의 구호활동도 마찬가지다. 이들 시민사회단체가 밀착형 지원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역사회 기반이 있었다. AWO는 대홍수 발생 이전부터 라인란트팔츠주 곳곳에서 주민들과 관계를 맺고 복지 사업을 운영해 왔다. 지역 사정을 잘 알고 주민들과 신뢰를 쌓아온 경험을 통해 피해자의 입장에서 회복을 도울 수 있었다.
피해자의 관점을 고려하기 위해선 공공의 힘만으론 어렵다. 때문에 민간과 연대를 통해 재난을 극복하는 방식은 독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정부를 대신해 시민사회단체가 재난 피해자에게 정부가 제공하는 법률·의료 등 전문적인 상담 서비스를 연계해주는 허브 역할을 한다. 미국은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주민이나 민간인을 재난 처리 담당관으로 위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방식은 다르지만 평소 지역사회에서 정부와 주민을 잇는 역할을 수행해왔던 민간 단체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재난 대응 인력으로 활용한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민간이 공공과 피해자를 잇는 사회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상해야 해요. 독일처럼 지역 활동 조직에 권한을 주고 교육하는 방식 바람직.
반면 한국에서는 정부와 재난 피해자를 연결하는 중간 지원 조직이 사실상 전무하다. 재해구호법에 따라 전국자율방재단연합회와 새마을운동조직 등 일부 민간 단체가 이재민이 발생하면 지원에 나서긴 하지만 이후의 실질적인 피해 회복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는 아니다. 재난 구호 책임 주체가 지자체에 집중돼있고 민간 참여도 제한적인 부분에서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정부도 현재의 공공 주도 재난 지원 체계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재난피해자지원센터를 조직해서 운영하고 있다. 그간 법에 센터를 설치할 수 있다고 명시만 됐었던 시스템을 활성화한 것이다. 또 재난복구지원국을 신설해 재난현장지원총괄과와 사회재난현장지원과, 자연재난현장지원과 등으로 피해자 지원을 세분화했다. 그러나 중앙 정부 단위의 변화일 뿐, 실제 재난 피해 현장의 당사자인 지자체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재난의 현장을 수습하는데에 조금 더 정부의 손길이 닿을 뿐이지, 진정한 의미의 일상회복으로 이끄는 덴 여전히 역부족이다.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은 기후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기반의 민관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지원을 통해 기존의 활동 중인 민간조직이나 단체를 재정비해 재난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한다고도 했다.
“정부에서 재난 대응을 하다보면 현장 공백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정부도 이 점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권한이 관 중심으로 짜여져 있어요. 이제는 민간이 공공과 피해자를 잇는 사회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상해야 해요. 기후재난이란게 특정 지역에서만 터지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민간단체들을 육성해야죠. 독일처럼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존 조직에 권한을 주고 교육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어요. 주민자치위원회와 같이 지역의 일상적인 조직들을 어떻게 재구조화하고 역량을 쌓을 수 있게 시간과 지원을 해나가야 합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민간의 역할을 설계하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 목소리를 민간이 정부 정책에 반영해나갈 수 있는 협력 체계가 구축돼야합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공지영·이시은·신현정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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