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江都)의 원초적 경제 ‘시장’
왕에 보고됐지만 물건값 못잡아
오랫동안 비가 안오면 저자 옮겨
말·종이·물고기 파는 특별시장도
지난 12일은 강화도 풍물시장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상가 건물 안의 강화풍물시장은 상설이지만 그 바깥은 2일, 7일, 닷새마다 장터거리로 변한다. 강화군에서 인정한 농사짓는 사람들이 오일장에 맞춰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내다파는 경우가 많다. 수도권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직거래 장터이기 때문에 서울 등지에서 일부러 찾는 손님들로 넘쳐난다.
이날 장터에는 폭염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정오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감자, 양파, 호박, 가지, 고추, 옥수수 같은 저마다의 물건을 내놓고 파는 이 대부분이 할머니들이었다. 할아버지들은 간혹 눈에 띄는 정도였다.
한 할머니는 깻잎 한 다발을 3천원에 팔았는데, 비름(나물), 질경이, 머윗대, 고구마순, 익모초, 뽕잎 새순, 고들빼기, 고사리, 깐마늘, 얼룩강낭콩이라고도 하는 호랑이콩 등속을 펼쳐 놓고 있었다.
강화도 오일장에 나온 각종 농산물을 보노라면 아주 옛날 옛적 시장의 모습도 이랬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수십만 명이 한꺼번에 몰려든 800년 전의 강화에도 시장은 있었다. 그때 역시, 강화도의 현지인들이 내다파는 농산물을 개성에서 옮겨 온 피란민들이 자신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떤 물건과 맞바꾸었을 게다.
고려시대 또한 정부에서는 물가 잡기가 중요 정책 목표 중 하나였다. 고려가 강화도로 도읍을 정한 지 30년이 다 되어 가던 1261년 5월, 물가 불안이 최고조에 달했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나섰으나 실패했다. 이런 내용이 ‘고려사절요’에 실렸다. 당시 시중의 가게, 즉 시전(市廛)을 관리 감독하던 경시서(京市署)에서 왕에게 보고했다. “지금 시장의 쌀은 싸고, 물건값은 뛰어 비싸니 물가를 조정하게 하소서.” 왕이 그대로 지시했으나, 물가 뛰는 상황을 바로잡지는 못했다고 ‘고려사절요’는 썼다.
경시서가 관리하던 시전(市廛)의 점포들은 따로 거리를 형성했던 모양이다. 이를 시가(市街), 즉 저잣거리라 했다. 이 시가 주변으로는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모여 살았다. 먹거리를 파는 가게가 많고, 돈이 도는 시장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리게 마련이다. 강도(江都)에 형성된 시장 주변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강화로 천도한 지 4년이 흐른 1236년 3월, ‘시가 남쪽 동네에 불이 났다[市街南里, 數百家, 火]’. 불이 난 사실만을 단순 기록했지만, 수백 가구가 불에 탔다면 그 피해는 실로 막대했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고려시대에는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시장을 옮기고는 했다. 강도 시기에도, ‘오랜 가뭄으로 저자를 옮겼다[以久旱, 徙市]’, ‘가뭄으로 저자를 옮겼다[以旱, 徙市]’는 기록이 여럿 보인다. 시장을 옮기면 비가 온다는 일종의 기우제 형식의 통설이 작동했던 게 아닌가 싶다.
강도의 시장은 개성에서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경시서가 관리하는 시전이 중심을 이루었을 터이고, 일상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그때그때 사고파는 난전도 있었을 게다. 난전에서는 강화 도성 주변의 농민들이 일군 각종 농산물이나 땔감 등을 파는 시장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말을 파는 마전(馬廛), 종이를 파는 지전(紙廛)·저시(楮市), 물고기를 파는 어점(漁店) 같은 특별 시장도 있었다.
곡식 종자를 판매하는 시장도 별도로 있었던 듯하다. 1259년 2월,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에 ‘신흥창(新興倉)의 은 10근을 내 곡식 종자를 바꿔 가난한 백성에게 주었다’는 ‘고려사절요’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정부 기관과는 별도의 씨앗 가게가 따로 있었다.
이규보의 시 중에 ‘수도의 시장 네거리에서 술꾼을 모아 놓고 큰 잔으로 술 마시고 싶다’고 읊은 작품이 있는데, 이를 보면 도성의 시장통에는 규모 있는 밥집, 술집도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가게와 관련한 우리말도 이제는 점차 흐릿해져 간다. 피륙을 파는 가게를 드팀전, 곡식을 파는 점포를 시게전이라 했고, 온갖 씨앗 파는 곳은 잡살전, 놋그릇 가게는 바리전, 건어물 가게는 마른전, 말리지 않은 어물 파는 곳은 진전, 닭이나 꿩, 오리 파는 곳은 어리전,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파는 곳은 푸주라 했다. 술집도 대폿집, 다모토리, 선술집 등 그 부르는 이름이 다양했다.
인류 역사와 함께 해 온 시장은 사람과 사람, 삶과 삶이 맞부딪히는 현장이다. 누군가 말했다.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의욕을 잃었을 때 시장에 가라고. 지금의 강화 오일장이 그렇듯 800년 전 강도(江都)의 시장 역시 백성들의 피와 땀이 흐르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을 것만은 분명하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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