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최대 생활권이자 경제권

‘대량 운송·정시성’ 철도가 중심

GTX라는 또 하나의 혁명 진행

유산 활용 ‘관광자원 개발’ 필요

임병식 국가유산위원
임병식 국가유산위원

국가유산위원 자격으로 근대 철도 유산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았다. 경기도에 철도 관련 역사 유산이 많다는 것이다. 임진각 자유의 다리와 독개다리, 도라산역, DMZ 철로, 장단역 등이다. 모두 1906년 개통한 경의선(서울~신의주 499㎞) 축에 있다. 일제가 경의선을 건설한 목적은 식민 통치와 대륙 진출을 위해서였다. 이런 역사적 토대 위에 한국전쟁과 분단까지 겹친다. 여기에 KTX, SRT, GTX까지 무려 120년이란 시간이 흐른다. 의왕에는 철도박물관도 있다.

자유의 다리는 경의선 노선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끊겼다. 다리는 전쟁과 귀환의 기쁨, 그리고 분단의 아픔을 안고 있다. 임진각 독개다리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 또한 경의선 철교의 일부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채 교각만 남았다.

경의선 남측 마지막 역인 도라산역은 비무장지대(DMZ)와 북쪽 판문역으로 이어진다. 도라산역은 2002년 개통 당시부터 남북 철도 연결을 염두에 두고 건설됐다. DMZ 철로 또한 경의선 일부로 핵심 철도 유산이다. 한국전쟁 당시 장단역에서 멈춰 선 증기기관차는 탄흔을 간직한 채 오늘도 전쟁과 분단을 증언한다. 이들 철도 유산은 단순한 관광시설이라기보다 식민지 지배와 전쟁, 분단, 그리고 평화를 상징한다. 이런 스토리텔링은 세계적으로 드물기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서 충분한 잠재력을 지닌다.

인구 1천400만명의 경기도는 최대 생활권이자 경제권으로 성장했다. 경기도에는 1989년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를 시작으로 판교·광교·동탄 등 대규모 신도시가 잇따라 조성됐다. 서울을 대신해 대규모 주거지를 공급하고, 대기업 입주에 따른 인구 증가에 부응한 개발이었다. 대량 운송과 정시성이 장점인 철도(GTX와 지하철 포함)는 중심에 있었다. 철도는 단순히 사람을 실어나르는 교통수단에만 그치지 않는다. 도시 구조를 바꾸고, 생활 방식을 바꾸고, 때로는 한 지역의 흥망을 좌우한다. 120년 전 경인선과 경의선, 경부선, 경원선은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이동 시간을 줄였고, 사람과 물자의 흐름을 바꿨다.

경기도에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라는 또 하나의 철도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GTX는 이동 시간 단축을 넘어 생활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서울과 접근 시간을 줄였고, 경기지역 내 왕래를 재촉했다. 이동 시간이 단축되자 도민들은 보다 확장된 생활권에서 일하고, 배우고,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철도는 도민들의 생각과 소비, 문화와 경제를 함께 변화시켰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곳을 꼽으라면 단연 경기도다. 경기도는 반도체 클러스터에 힘입어 젊은 인구 유입이 가장 빠르다. 그 변화의 중심에 철도가 있다. 철도는 도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창이다. 도쿄의 거미줄 같은 철도망은 거대한 수도권을 단일 생활권으로 묶었고, 프랑스 TGV는 파리와 지방 간 심리적 거리를 좁혔다. 런던도 철도를 중심으로 확장됐다. 사람들은 철도를 따라 움직이고, 도시는 그 움직임을 따라 성장했다. 경기도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도시의 경쟁력은 속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고, 골목이 살아나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함께 숨 쉴 때 비로소 좋은 도시다. 철도는 목적지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경기도 일대 근대 철도 유산은 잠재 가치가 무궁하다. 낡은 플랫폼과 오래된 역사는 단순한 시설이 아니다. 역사의 흔적과 추억과 삶을 품은 소중한 자원이다. 오래된 철도의 가치에 의미를 두는 일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변화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곳이다. 우리는 흔히 도시를 건물의 높이와 인구로 평가한다. 그러나 좋은 도시는 어떻게 시간을 누릴 수 있는지로 결정된다. 열차는 레일 위를 달리지만, 그 끝에서 이어지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경기도의 미래 또한 그 관계를 얼마나 따뜻하게 잇느냐에 달려 있다.

철도 유산을 활용한 스토리텔링과 관광자원 개발은 좋은 대안이다. 120년 전 경의선이 놓은 철길은 오늘 GTX로 이어지고 있다. 시대마다 달리는 열차는 달라졌지만, 철도가 이어야 하는 것은 결국 사람과 도시, 그리고 역사다.

/임병식 국가유산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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