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 명분에 또 ‘애국’ 강요받아
용인 클러스터 국책사업에 분통
팔당상수원 중첩규제 감내 불구
하천 포함 도수관로 총27㎞ 관통
하루 통행량만 1만2천여 대에 달하는 광주시 국도 43호선 광지원~벌원사거리 구간. 평소에도 극심한 상습 정체로 악명이 높은 이 도로 위에 조만간 거대한 굴착기가 들어서게 된다. 대한민국 반도체 패권을 쥐락펴락할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의 젖줄이 될 초대형 도수관로(지름 1.8~2.3m) 2개가 이 길 아래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원 속에 국책사업은 쾌속 질주하고 있지만, 정작 그 ‘물길’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광주시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왜 용인이 누릴 반도체 영광을 위해 광주가 또다시 교통지옥과 싱크홀 공포를 견뎌야 하느냐”, “무조건적인 광주시만의 희생 강요는 반대한다”는 비판이 봇물을 이루고 거리에 성난 현수막이 나부낀다.
■ 50년 중첩규제의 감옥, 그리고 잔인한 추가 희생
광주시는 지난 50여 년간 ‘수도권의 깨끗한 식수원 공급’이라는 공익적 명분 아래 숨죽여 왔다. 팔당호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 1권역을 비롯해 무려 6개의 규제가 겹겹이 묶여 있다.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은 꿈도 못꿨고, 기업 유치는 통곡의 벽에 가로막혔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의 면적 규제와 수변구역 묶음은 광주를 소규모 공장과 주거지가 뒤엉킨 기형적인 난개발의 도시로 만들었다. 도로와 하천 등 기초적인 기반시설조차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광주에 또 한번 ‘애국’과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시행하는 총사업비 2조1천554억원 규모의 ‘용인반도체 산단 통합용수공급사업’의 핵심 노선이 광주를 관통하게 된 것이다.
당초 1단계 사업계획은 성남정수장에서 분기해 성남을 거쳐 용인으로 가는 노선이었다. 그러나 일반산단(SK하이닉스) 물량이 추가돼 하루 107만t으로 공급량이 늘어나자, 노선은 돌연 ‘하남~광주~용인’으로 변경됐다. 오는 2034년까지 진행될 1·2단계 공사 기간 내내 해당 광주 시내 도로는 최소 1개 차로는 차단, 시민들은 불편함을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용수관로는 하천까지 포함해 총연장 27㎞ 가량이 광주를 통과하게 된다.
주민들이 맞닥뜨릴 현실은 가혹하다. 다년간 이어질 장기 공사로 인한 교통마비는 물론 굴착 과정에서 발생할 진동과 소음, 그리고 ‘싱크홀’ 공포가 지역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광주 땅 밑으로 최대 107만t의 물이 흐르는 동안 정작 개발에서 소외된 광주지역의 장래 용수 수요량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기우 섞인 우려까지 나온다는 점이다.
박관열 시장은 “이번 사업이 국가 첨단전략산업의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중요한 국책사업이라는 점은 공감한다”면서도 “하지만 그동안 팔당상수원 관리라는 공익을 위해 중첩규제를 감내해 온 광주가 아무런 실익도 없이 교통불편과 지역개발 제약이라는 부담만 일방적으로 지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토로했다.
지난 1일 취임한 박 시장은 해당 현안을 인식한 후 취임 전임에도 광주시민의 자격으로 수원 삼성전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반도체 전쟁, 그 화려한 축제의 이면에서 또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받는 광주시. 박 시장은 “더 이상 50년 묶인 광주를 서글픈 잔혹사가 계속되는 지역으로 남겨선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