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주 변호사·순례길 학교 대표
조용주 변호사·순례길 학교 대표

도시는 길을 통해 성장한다. 과거에는 항구와 철도가 도시의 운명을 바꾸었다면, 오늘날에는 사람이 걷는 길이 도시의 품격을 결정하고 도시의 철학을 담아낸다. 세계의 명품 도시들은 예외 없이 시민과 여행자가 오래 머물며 걸을 수 있는 길을 가지고 있다. 인천은 바닷길, 하늘길을 가진 도시이다. 이제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

필자가 대표로 있는 순례길 학교는 오래 전부터 인천을 ‘걷는 자의 수도’로 만들자는 제안을 해왔다. 인천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도시를 넘어, 세계의 걷는 사람들이 찾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바다와 하늘, 섬과 도시, 역사와 자연이 하나의 길로 이어지는 도시인 인천은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드문 조건을 갖춘 도시다.

그 중심에는 올해 7월 새롭게 출범한 영종구가 있다. 영종도는 대한민국 하늘길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곳이다. 영종도에는 해안선과 섬들, 아름다운 낙조, 해변과 숲길이 어우러진 독특한 지형을 지녔다. 그리고 섬과 섬,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도 자랑거리다. 최근 신도대교가 개통하면서 영종도와 신도·시도·모도가 하나의 생활권이자 관광권으로 연결되었다. 올해 초 청라하늘대교가 개통해 영종도와 청라를 잇고, 무의대교는 무의도와 소무의도를 연결한다. 영종도를 중심으로 육지와 여러 섬이 하나의 순환축으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신도대교의 개통으로 영종도 외곽을 하나의 이야기와 하나의 걸음으로 연결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이에 맞추어 필자는 ‘영종이음길’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종이음길은 단순한 해안 산책길이 아니다. 영종도를 중심으로 청라와 무의도, 신도·시도·모도를 연결하여 바다와 섬, 도시와 자연을 하나의 길로 잇는 새로운 순례길이다. 무엇보다 이 길은 대한민국 최초의 ‘다리 순례길(Bridge Pilgrimage Trail)’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세계에는 산을 넘는 순례길이 있고, 숲을 걷는 순례길이 있으며,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길도 있다. 그러나 여러 개의 대형 교량을 건너며 바다와 섬을 함께 체험하는 순례길은 찾아보기 어렵다. 영종이음길은 다리를 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다리는 두 지역을 연결하는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고, 자연과 도시를 이어 주며,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상징이 된다.

청라하늘대교에서는 국제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고, 무의대교에서는 섬과 갯벌의 풍경을 만나며, 신도대교에서는 서해의 넓은 바다와 낙조를 품게 된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영종도의 역사와 생태, 문화와 사람을 함께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길은 단순한 관광상품을 넘어 도시의 정체성을 만든다.

영종이음길은 인천만의 독특한 자산을 가진 길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 길을 통해 바다를 건너고, 다리를 건너고, 섬을 잇는다. 영종이음길은 시민의 건강을 위한 길인 동시에 지역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걷는 사람은 머무르고, 머무는 사람은 지역에서 소비하며, 그 소비는 지역의 식당과 카페와 숙소와 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온다. 길 하나가 도시의 경제와 문화를 함께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보행로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리마다 전망쉼터와 이야기판을 설치하고 영종도의 역사와 생태를 담은 해설을 더하며 순례자 여권과 스탬프 인증, 계절별 걷기 축제와 국제 걷기 행사를 연계해야 한다. 길은 걸을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일을 새롭게 출범한 영종구가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영종이음길은 하나의 관광사업이 아니라 영종구를 대표하는 도시 브랜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브랜드는 인천을 대한민국 최고의 걷기 도시로, 더 나아가 세계의 걷는 사람들이 찾는 도시로 이끄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인천이 걷는 자의 수도로 만드는데 가장 아름다운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조용주 변호사·순례길 학교 대표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