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딸이 학교에서 늦게 왔다는 이유로 샤워기 헤드로 때리고 흉기로 위협한 친모, 두달배기 아들을 폭행해 머리뼈를 골절시킨 아버지, 돌도 안 된 아기가 울자 입에 옷가지를 넣어 숨지게 한 아버지까지. 최근 법정에 오른 사건들을 보면 사람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말문조차 막힌다. 가해자는 남이 아니라 세상의 전부여야 할 부모였다. 법원이 이들에게 내린 형량은 각각 징역 2년, 4년, 7년이다. 어린 자녀를 향한 범죄의 무게를 헤아리면, 납득할 수 없는 죗값이다.
국가 예산을 늘리면 아동학대가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지난 26일 국회예산정책처의 ‘아동학대 예방 및 피해아동 보호사업 평가’ 보고서를 보면 믿음이 흔들린다. 아동학대 관련 중앙정부 예산은 2020년 267억원에서 올해 587억원으로 2.2배 늘었다. 지방자치단체 재정 역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러나 ‘재학대 비율’은 수년째 16% 안팎에서 요지부동이다. 정부 목표치인 7.7% 달성은 요원하다. 예산은 갑절을 들였는데 아이들은 여전히 학대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서글픈 ‘예산의 역설’이다.
실효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아동학대 대응 예산은 보건복지부가 90% 이상인 538억6천900만원을 독점하고 있다. 성평등가족부와 경찰청, 법무부에도 48억원의 예산이 배정되지만 아무래도 사법수사와 회복 지원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재정이 사후 대응에 편중되어 있으니, 학대나 재학대가 발생하기 전 예방 단계에서 충분히 작동하지 못한다. 질병의 원인은 방치한 채 발병 후 통증 완화에 주력하는 셈이다.
‘내리사랑’은 가르치지 않아도 DNA에 새겨진 본능이라 여겨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부모의 잔혹한 학대를 수차례 목격해왔다. 운전대를 잡을 때도 면허가 필요한데, 한 생명의 몸과 영혼을 빚어내는 부모라는 자리에는 더 엄격한 자격이 필요하다. 지금 절실한 것은 사건이 터진 뒤 아이를 격리하는 손길이 아니라, 위태로운 가정을 미리 찾아내 돌보는 손길이다.
아동을 보호하는 기관들이 저마다 다른 손으로 아이를 잡고 있다 보니 정작 위기의 순간에는 서로 놓치는 사각지대가 생긴다. 부처와 지자체, 관계 기관이 정보를 나누는 통합 거버넌스가 시급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명의 존엄을 지켜주는 ‘국가의 자격’도 함께 물어야 한다.
/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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