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반도의 허리에는 다른 곳과는 달리 여러 강이 겹쳐 흐르는 특수 지형이 있다. 조강(祖江). 한강, 임진강, 예성강의 세 강물에 서해의 바닷물까지 더해져 흐르는, 그야말로 큰 강물이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은 많이들 부르는 이름인데 조강은 왠지 낯설다. 조강은 남쪽에서는 김포반도와 강화·교동 위쪽을, 북에서는 개풍지역과 황해도 연안 아래를 흐른다. 한국전쟁 이후 조강은 남과 북의 분단선이 되는 바람에 사람의 왕래마저 끊겼다. 사람이 오가지 않으니 그 이름 또한 불리지 않게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조강은 그렇게 자꾸만 낯설어져 갔다.
우리말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긴 일석 이희승(1896~1989) 선생의 선향이 바로 개풍군 조강 마을이다. 일석이 어릴 적 살았던 조강 마을은 상조강리와 하조강리로 나뉘어 있었고, 상조강리에는 일석의 일가들만 살았다. 일석은 ‘삼토삼룡수(三兎三龍水)로 시작하는 조강의 물때를 알려주는 시구도 기록해 놓았다. 조강의 이름에 할아비 조자가 들어간 이유가 이곳의 물때가 표준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일석은 이해했다.
조강 마을이 북쪽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김포반도에도 조강 마을이 있었고 조강포구라는 나루터도 있었다. 조선시대 이 조강 나루를 조강진(祖江津)이라 했으며, 이곳 조강 언덕에는 조강원(祖江院)이라는 숙박 시설도 있었다. 김포와 개풍 사이 조강의 양안을 ‘조강도(祖江渡)’라 부르기도 했다. 김포와 강화 사이를 흐르는 염하(鹽河) 또한 조강의 한 자락이다. 고려의 대문호 이규보는 계양의 수령으로 발령받아 올 때 이 조강을 건넜고 그 감흥을 담아 ‘조강부(祖江賦)’라는 시를 남겼다.
지난 25일 강화군 삼산면 하리선착장과 서검도에서는 ‘한강 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가 펼쳐졌다. 분단선이 된 한강 하구를 평화 지대로 삼아 남북 평화 교류의 물꼬를 트자는 차원이다. 1953년 체결한 정전협정에서도 한강 하구는 민간 선박 항행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남과 북은 그 강 양쪽을 철조망으로 막아 그 누구도 오가지 못하도록 장막을 쳤다. 강의 이름도 길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 잊히게 마련이다. 남과 북은 이제라도 조강의 물길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할아버지 강 조강, 사람이 오가고 그 이름 또한 누구나 부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진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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