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삶 형상화한 신경림 시인
2주기 유고 산문집 담긴 이야기
동시대와 분리되지 않은 글쓰기
사람과 사람 사이 이어주는 문학
신경림(1935~2024) 선생은 소외된 약소자들의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형상화함으로써 그들의 삶과 감각 그리고 생활적 실감을 가장 구체성 있게 보여준 시인이다. 선생의 첫 시집 ‘농무(1973)’는 산업화 시대를 살아가는 농민들 삶의 세목을 담아냄으로써 한국 시의 사회적 상상력을 한 차원 높인 기념비적 세계로 평가받고 있다. 그 안에는 허물어져가는 농촌의 생활적 세부가 충실하게 재현되었고, 우리는 당대 농촌 사회에 대한 가장 탁월한 사실적 기록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선생은 늘 어렵게 살아가는 고향 사람들과 이웃들을 위해 조그만 마음의 위안이 되고자 하였다. 그 작은 소망대로 선생은 가난한 이웃을 위해 시를 썼고 그들에게 한없는 위안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그네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을 선생은 자기만의 방법을 통해 이루었고 이것은 자신을 겸허하게 돌아보지 않는 문학은 제 아무리 거창한 얘기를 하더라도 진실을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 족했다.
최근 선생의 2주기를 맞아 유고 산문집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가 출간되었다. 그 안에 담긴 산문들은 크게 세 범주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선생 자신의 경험적 기록으로서 시에 대한 의견도 이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의견 표명으로서, 균형 잡힌 포용적 해석과 평가가 든든하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강을 닮고 강은 사람을 닮아가는 신경림 버전의 인생론적 필치를 담은 글들이다.
시를 생각하는 글에서 선생은 ‘생각해보면 내가 시를 쓰는 일은 늘 내 시로부터 도망치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그 도망은 완벽한 것은 되지 못했다. 내가 뿌리박고 사는 땅, 나와 함께 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부터까지 도망칠 수가 없었으니까’라고 함으로써 동시대인들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자신의 시쓰기를 확인하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 또는 이 세상을 사는 많은 불행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꿈이 되고 별이 되는 것,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 바로 시만이 가진 색채요 향기로서 시의 아름다움은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을 터이다’라고 함으로써 자신의 시가 소외된 이들에게 가닿는 미학적 실체임을 고백하였다.
두 번째 영역의 글에서는 ‘친일 행위를 덮어놓고 용서하고 우물쭈물 덮자는 데 나는 결코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친일규명에는 포지티브한 자세가 필요하다. 무언가 우리의 미래를 위해 생산적이고 보탬이 되는 것이어야지 부정적 자학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시대와 그 시대를 산 선인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도 있어야 하리라’라고 함으로써 지난 일제강점기 때 벌어진 제국 협력 행위에 대해 단연 비판적이지만, 그것을 규명하는 데서는 포지티브한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미래를 위해 생산적 보탬이 되는 방향을 주문하였다. 그 시대를 살아간 선인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청한 것이다.
마지막 범주에 드는 글로 주목할 만한 것은 ‘나의 인도 기행’인데 선생은 시인답게 하늘 가득한 별을 보려 했지만 그러지 못하였고 이제 지구상에 오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크게 아쉬워한다. 별과 오지와 오랜 인류의 기원을 결속하는 이러한 그리움이야말로 ‘시인 신경림’의 마지막 심문(心紋)이었을 것이다. 선생은 ‘나는 강으로부터 세상을 배우고 강으로부터 문학을 공부했다. 강을 통해서 세상에 나가고 강을 통해서 사람을 만났다. 강이 내게는 길이요 학교였던 것이다. 남한강은 물론 북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그리고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내가 열심히 강을 찾아다닌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강은 사람과 마을을 막거나 가르지 않고 이어주고 안아준다는 사실도 강을 보고 다니면서 알았다’라고 함으로써 오래고도 깊은 시원의 세계로 역진해가는 마음을 들려주었다. 시와 역사에 대한 포용적 감각 그리고 성숙한 인생론을 펼친 선생의 산문이 널리 읽혀, 우리 사회의 균형적 지남이 되어주기를 희원해본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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