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 문학상 수상작 2517권 폐기돼

시민단체, 복원 지원하면서 심의절차 보완요구

“일부 묘사에 검열말고 자율권 보장해야”

29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교육청 남부청사 앞에서 열린 ‘사라진 책들을 제자리로, 경기도교육청이 해결하라’ 기자회견에서 홍순영 경기민예총 문학위원장이 발언하며 폐기 도서 복원과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2026.7.29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29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교육청 남부청사 앞에서 열린 ‘사라진 책들을 제자리로, 경기도교육청이 해결하라’ 기자회견에서 홍순영 경기민예총 문학위원장이 발언하며 폐기 도서 복원과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2026.7.29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작품의 맥락과 주제보다 일부 묘사만 떼어내 이뤄진 폐기는 시대착오적 구속이자 자율권 침해입니다. 학생들이 다양한 독서 경험을 통해 타인의 삶을 배우고 사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합니다. -홍순영 경기민예총 문학위원장-

경기지역 학교도서관에서 도서 선정과 폐기 기준이 외부 압력에 따라 엇갈리면서 학생들이 다양한 관점과 정보를 접할 권리를 침해당할 수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성평등·문학 도서 수천 권은 무더기로 폐기된 반면 역사왜곡 지적을 받은 도서(7월15일자 7면 보도 등)는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인데, 전임 교육감 시절 이뤄진 대규모 장서 정리를 새 교육감 체제에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는 모양새다.

역사왜곡 논란 ‘리박스쿨 추천서’ 학교도서관 1년 넘게 퇴출 안됐다

역사왜곡 논란 ‘리박스쿨 추천서’ 학교도서관 1년 넘게 퇴출 안됐다

부적절한 현대사 서술로 논란을 빚은 아동용 도서(2025년 9월22일자 7면 보도 등)가 일부 표현에 역사왜곡이 있다는 국사편찬위원회의 검토 의견에도 불구하고 1년 가까이 사실상 방치된 채 경기지역 학교도서관에서 여전히 대출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경기교육감직
https://www.kyeongin.com/article/1767319

29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교육청 남부청사 앞에서 다산인권센터·수원평화나비·참교육학부모회·전교조 경기지부 등 도내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성평등·성교육도서 폐기에 분노하는 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도서관에서 폐기된 도서의 복원과 재발 방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들은 “도교육청 공문에 따라 문학·인문학·성평등·성교육 도서 수천 권이 폐기되고 열람 제한된 것은 학생들의 배울 권리와 학교도서관의 다양성을 훼손한 교육행정”이라며 “전임 교육감 시기의 과오를 끊어내도록 안민석 도교육감이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서 관리에 ‘고무줄 잣대’가 적용됐다는 비판은 특정 단체의 집단 민원을 계기로 객관적 검증이나 일관된 심의 기준 없이 대규모로 장서 정리가 이뤄진 데서 비롯됐다. 지난 2023년 보수단체의 집단 민원 이후 도교육청이 관련 유해도서 목록 등을 첨부한 공문을 일선 학교에 전달하면서 2천517권의 도서가 폐기되고 3천340권이 열람 제한됐다.

이 과정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최진영의 ‘구의 증명’,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등 문학을 비롯한 철학·과학 분야 책들이 서가에서 사라졌다. 유수 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작품에 더해 독일에서 ‘올해의 과학도서상’을 받은 ‘사춘기 내 몸 사용 설명서’와 영국 교육전문지의 지식상을 받은 ‘10대들을 위한 성교육’ 등 국내외 수상 이력이 있는 책도 포함됐다.

반면 국사편찬위원회가 일부 표현에 역사왜곡이 있다는 검토 의견을 낸 리박스쿨 추천 아동용 역사서는 학교도서관에서 대출할 수 있어 장서 처리 기준의 일관성에 대해 의문이 따랐다. 이날 학교도서관 정보관리 시스템 ‘독서로’를 확인한 결과, ‘엄마가 들려주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 이야기’는 여전히 도내 학교 도서관에서 138건 조회됐으며 대출도 가능한 상태였다.

29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교육청 남부청사 앞에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폐기·열람 제한된 성평등, 성교육 도서의 복원과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2026.7.29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29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교육청 남부청사 앞에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폐기·열람 제한된 성평등, 성교육 도서의 복원과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2026.7.29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역사적 사실에 어긋난 내용을 검증해 바로잡는 일과 성평등·문학 도서에 담긴 관점이 특정 집단의 가치관과 다르다고 접근을 막는 일은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오류는 확인과 수정의 대상이지만, 다양한 해석과 가치 판단이 가능한 책을 일부 표현이나 관점이 불편하다는 민원만으로 배제하면 학생들이 여러 생각을 접하고 스스로 판단할 기회까지 좁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도내 시민사회단체들은 각 학교에 복원 지침을 전달하고 폐기된 도서의 재구입 예산을 지원하는 한편, 학교도서관 운영 과정에서 사서와 학부모·학생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도록 심의 절차를 보완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홍순영 경기민예총 문학위원장은 “유해도서 목록에 포함된 최진영의 ‘구의 증명’에는 ‘구가 죽었다. 나는 구를 먹기 시작했다’는 문장이 나온다. 줄거리만 좇으면 기괴한 설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작품 전체는 한 사람을 향한 특별한 애도와 몸의 기억을 따라가는 여정이자 상실 이후에도 삶을 지속시키는 힘을 찾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한강의 ‘채식주의자’ 역시 폭력을 거부한 인물이 인간이라는 종에서 벗어나려 할 때 벌어지는 일을 고통스럽게 보여주며 끝내 답이 아닌 질문을 남긴다”며 “우리는 해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끝까지 질문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작품의 맥락과 주제보다 일부 묘사만 떼어내는 ‘집어내기식’, ‘잘라내기식’ 검열은 시대착오적이며 자율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사라진 책과 작가들의 이름이 제자리를 되찾아 학생들이 다양한 독서 경험을 통해 타인의 삶을 배우고 사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